지난 1일 숙소인 서울의 한 호텔에서 만난 ‘렉’(생두언 차일럿)이 자신의 태블릿에 저장해 놓은 타이 코끼리자연농원의 코끼리들 사진을 보여주고 있다. 사진 최우리 기자
“우리에게는 그럴 권리가 없어요. 이제라도 엄마와 아들이 함께 살도록 해줘야 해요.”
사람 이야기가 아니다. 20년 전 생이별한 코끼리 모자의 사연이다. 지난 1일 서울 명동의 한 호텔에서 만난 타이의 코끼리 보호운동가 생두언 차일럿(닉네임 렉·57)은 대전오월드에 있는 수컷 코끼리 삼돌이(24) 이야기를 하면서 눈을 반짝였다. 삼돌이는 4살 때 부모와 헤어졌다. 그는 삼돌이가 이제라도 엄마인 서울동물원의 키마(35살 추정)와 함께 살게 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렉은 사람에 의해 학대당하는 코끼리를 구조해 보호하는 ‘코끼리자연공원’(ENP·Elephant Nature Park)을 운영한다. 치앙마이 시내 2㎢의 공원에는 82마리의 코끼리가 살고 있다고 한다. 렉은 공원에 오는 관광객들에게 코끼리의 자연스런 일상을 보여주고, 지역 주민들과 코끼리를 위해 숲을 가꾼다. 주민들이 경제활동을 하느라 숲을 없애지 않도록 커피 농사를 장려하고 그 커피를 사서 수출하는 일도 한다.
치앙마이 북쪽에서 태어난 소수부족 출신의 렉은 어려서부터 코끼리와 함께 살았다. 할아버지가 이웃 부족 우두머리의 아들을 고쳐준 대가로 받아온 늙은 암컷 코끼리 ‘코디’가 그의 첫 코끼리였다. 렉은 대학 졸업 뒤 1985년부터 여행사 가이드로 일했다. 그러던 중 일본인 관광객을 태운 코끼리가 쓰러져 숨지는 사태를 겪으며 충격을 받아 코끼리 보호운동을 시작했다.
렉이 관심을 가진 삼돌이는 한국 동물원 역사에서 빠질 수 없는 이름이다. 삼돌이는 1994년 3월3일 한국 동물원에서 태어난 최초의 코끼리였다. <한겨레>(94년 4월10일치 13면)에도 삼돌이의 탄생 소식이 실렸다. 삼돌이의 부모는 서울동물원이 85년 미국에서 들여온 아시아코끼리 칸토와 키마다. 하지만 이미 코끼리가 있던 서울동물원은 새끼인 삼돌이를 ‘잉여’로 분류하고 물개쇼에 이용할 물개를 확보할 목적으로 98년 부산 동래동물원으로 보냈다.
렉은 ‘새끼 코끼리가 6~10살까지는 어미와 함께 생활하며 코끼리 사회의 규범을 익히며 성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삼돌이는 이를 배울 기회가 적어 안타깝다고 했다. 삼돌이는 2001년 경영난 때문에 동래동물원이 폐원하자 다시 대전오월드로 보내져 줄곧 혼자 지내고 있다. 무리와 함께 살아본 경험이 적어서일까. 삼돌이의 성격이 폭력적이었다는 과거 기사도 찾아볼 수 있다.
서울동물원 엄마 ‘키마’ 1994년 첫 출산
4살때 헤어진 아들 ‘삼돌이’ 대전에 홀로
“사람에게 동물가족 분리시킬 권리 없다”
2003년부터 서울동물원에 있는 암컷 아시아코끼리 사쿠라. 사쿠라 귀향운동을 펼치고 있는 장기철씨가 제공한 사진이다.(왼쪽) 1994년 처음으로 국내에서 태어난 코끼리 삼돌이는 20년째 엄마 시바와 떨어져 대전오월드에서 지내고 있다. 동물을위한행동이 제공한 사진이다.(오른쪽)
“물론 삼돌이가 무리와 함께할 때 잘 어울릴지 아닐지 확답은 할 수 없다. 수컷은 발정이 오면 엄마도 못 알아보고 매우 거칠게 변한다. 그렇다 해도 다른 무리와 담장을 사이에 두고 같이 살면서 적응해야 한다. 함께 살아볼 기회를 줘야 한다.”
렉은 ‘할머니 코끼리’가 무리의 질서를 잡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화제가 됐던 일화도 언급했다. 키마가 서울동물원에 함께 사는 젊은 암컷 수겔라의 11개월자리 새끼 희망이가 물에 빠지자 달려와 구해준 일이다. 렉은 “삼돌이와 키마도 그런 가족이었는데 사람이 무슨 권리로 분리했냐”라고 힘주어 말했다. 하지만 대전오월드 관계자는 “암컷을 구하려고 수소문 중이다. 희귀동물인 코끼리 보유를 포기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사실 렉이 한국 코끼리에 관심을 가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3년에는 서울동물원에 사는 암컷 아시아코끼리 사쿠라(53살 추정)를 동물원에서 그만 ‘은퇴’시키고 타이로 보내달라고 제안했다. 하지만 서울시로부터 아무런 대답도 듣지 못했다. 사쿠라는 생후 7개월 무렵 타이 북부 밀림지대에서 포획돼 오사카 부근 다카라즈카 패밀리랜드로 보내져 쇼에 이용되다 2003년 서울동물원으로 건너왔다.
렉은 “만약 사쿠라를 타이로 보내준다면 의료나 운송비용을 모두 지불하겠다. 코끼리 나이 50대면 그리 늙은 나이가 아니다. 사쿠라가 남은 생을 행복하게 보낼 수 있도록 한국인들이 도와달라”라고 말했다. 이에 서울동물원 관계자는 “사쿠라는 잘 지내고 있다”고 답했다.
동물보호단체 ‘동물을위한행동’이 추정하기에 현재 전국 동물원 8곳에 코끼리 18마리가 살고 있다. 취재에 비협조적인 민간코끼리공연업체 제주도 점보빌리지에 있는 코끼리들도 있다. 코끼리는 영장류, 돌고래, 북극곰과 함께 동물원에서 사육이 불가능하고 해서는 안 되는 가장 대표적인 동물로 꼽힌다. 전시 중인 코끼리들은 시멘트 바닥을 견뎌야 하는 발의 건강이 생명과 직결된다. 코끼리가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발 관리를 받도록 스스로 움직이게 하는 행동풍부화훈련이 필요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동물원이 이를 잘하지 못해 비판을 받아왔다.
렉은 마지막으로 “모든 동물원이 ‘교육 목적’이라고 하지만, 대부분은 진실을 알려주지 않고 있다. 코끼리는 자연에서 친구들과 함께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려야 한다”라고 말했다. 오는 14일 타이 코끼리자연공원에서는 사쿠라의 귀향과 삼돌이의 합사를 기원하는 등불을 날릴 예정이다.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