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나는 쇠재두루미 떼. 2013년 7월12일 몽골 군갈루트.
2013년 여름, 몽골 군갈루트 지역 조류 탐사중에 쇠재두루미를 발견했다. 20여 마리가 무리를 지어 흐린 하늘을 날고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사진을 찍기 위해 차를 세워 보니 거리가 좀 있었다. 아쉬웠지만 인증 샷만 몇 컷 찍고 다시 차에 올랐다. 다음 목적지로 가는 차에서 엘시디(LCD) 창을 열어 본 일행은 모두 말을 잃고 말았다. 사진을 크게 확대해 보니 새는 날개 깃이 군데군데 빠지고 털이 닳아 제대로 날기나 할지 의심이 들 정도였다. 먼 거리를 이동하면서 바람에 시달려 털이 닳아 너덜너덜해진 날개엔 이들이 날아온 멀고 험난한 여정과 고단한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번식을 마친 쇠재두루미는 몽골의 겨울을 피해 따뜻한 인도나 파키스탄으로 향한다. 이들의 여정엔 산이 워낙 높아 바람도 넘기 힘들다는 `죽음의 히말라야’가 가로막고 있다. <비비시>(BBC)가 만든 다큐멘터리를 보면, 쇠재두루미들은 단체로 히말라야를 넘기 위해 기류가 적당한 날을 고른다. 8천m가 넘는 고봉을 넘기 위해서는 엄청난 상승기류를 만나야 하는데, 한 번에 성공하는 경우가 거의 없을 정도다. 어렵사리 상승기류에 올라타도 끝이 아니다. 어렵게 산을 넘어온 이들을 기다리고 있는 천적 검독수리(골든 이글)를 피해야 한다. 짝을 지어 사냥에 나서는 검독수리는 완전히 녹초가 된 무리에서 어린 새를 떼어내며 능숙하게 사냥에 나선다.
쇠재두루미 둥지와 알. 2013년 5월17일 몽골.
쇠재두루미가 알을 품고 있던 둥지를 발견했을 땐 더 기가 막혔다. 둥지라 해봐야 맨땅인데 주변 잔돌이나 몇 개 모아 놓았을까? 둥지는 천적을 피하기 위한 위장은커녕 알과 새끼를 보호할 변변한 둥지 재료도 전혀 없다. 아무리 둘러봐도 허허벌판에 그냥 방치된 것처럼 보일 지경이다. 알을 품던 어미 새가 지나가던 차에 놀라 달아나면서 사람들 눈에 띈 것이다. 죽음과 같은 히말라야를 넘어 온 새가 낳은 알과 둥지는 언제 풀을 찾아 헤매는 말과 양에 밟히거나 차량에 전체가 박살 날지 몰랐다.
쇠재두루미 가족. 2015년 7월10일 러시아 알타이공화국 코쉬 아가츠.
쇠재두루미의 삶은 이렇듯 피로하고 위험하다. 2년 전 러시아 알타이공화국의 국경도시 코쉬 아가츠 초원에서도 어린 새 두 마리를 데리고 있던 쇠재두루미 가족을 만났다. 부화한 지 4주 정도 돼 보이는 새는 아직 날지 못했다. 쇠재두루미는 두루미 중에서 덩치가 가장 작다. 하지만 키가 1m나 되는 대형 종이라 어린 개체가 하늘로 날아오르는 데 4개월 정도 걸린다고 한다. 민가 근처라 사람들이 풀어놓은 말이 어린 새에게 접근하면, 쇠재두루미 부부는 역할을 나눠 행동했다. 말을 다른 곳으로 유인하고 말의 앞길을 몸으로 막아서면서 커다란 경고음을 냈다. 또 사람과 차가 접근하면 어미는 어린 새를 가슴에 바짝 붙이며 빠른 걸음으로 도망치거나 땅에 바짝 엎드려 몸을 숨겼다. 여름이 지나면 떠나야 할 멀고 험한 첫 여정을 위한 예행연습을 하듯.
어린 새와 함께 한 어미는 가슴에 검은 깃털을 길게 늘어뜨리고 긴 흰색 귀 깃이 바람에 휘날릴 땐 산신령 같은 외모를 자랑했다. 어린 새 덕분에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서 쇠재두루미 가족을 한참 지켜봤다. 한 컷 한 컷 이들의 모습을 기록했다. 세상에서 보기 힘든 이동에 나설 운명을 가진 쇠재두루미 가족 4마리의 행운을 빌며.
사진·글 김진수 <한겨레21> 기자 js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