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멀피플] 르포 | DxE 글로벌 록다운 재판
도계장 가로막아 벌금 300만원…업무방해 조각 사유될지 주목
도계장 가로막아 벌금 300만원…업무방해 조각 사유될지 주목
지난해 10월4일 경기 용인의 한 도계장을 막은 혐의(업무방해)로, 세 명의 활동가에게 벌금 300만원(약식명령)이 선고됐다. 이들은 정식재판을 청구해 17일 수원 지방법원에서 직접 변론을 했다. 왼쪽부터 이솔, 오유비, 김향기 활동가. 남종영 기자
네 시간의 일시정지=업무방해 지난해 그 날, 10월4일은 세계 동물보호의 날이었다. 비폭력 직접행동 동물권 활동가들의 네트워크인 ‘디엑스이’(Direct Action Everywhere)는 미국, 영국 등 14개국 29개 도시에서 ‘글로벌 록다운’ 행동을 벌였다. 도살장이나 육가공 업체 등을 점거하여 고기의 생산, 판매를 중단하는 직접행동이었다. 한국의 활동가들도 경기도 용인의 한 도살장으로 향했다. 네 명은 여행가방에 콘크리트 200㎏를 쏟아 넣고 자신의 팔을 넣어 결박했다. 소란 끝에 화물차 두 대만 들어갔을 뿐, 닭을 치킨으로 만들던 컨베이어 벨트는 결국 멈췄다. 오후 1시부터 5시까지 고기는 생산되지 않았다.
지난해 10월4일 경기 용인의 한 도계장 앞에서 동물 수송차량을 막아선 네 명의 활동가. DxE 코리아 제공
슬픔은 공감에 비례한다 업무방해 300만원짜리 사건이라면, 판사 사무실에 산처럼 쌓여있을 서류에 처박혔을 건이었다. 그러나 방청객들은 법정 변론의 시간을 가지게 됐다는 데 흥분했다. 우인선 재판장(형사2단독)은 세 명에게 법정 변론문을 읽고 동영상을 틀을 시간을 허락했다. 오유비 활동가가 처음으로 나섰다. “제가 어느 날 일어서지도, 팔을 펴지도 못하는 녹슨 철창에 다른 이들과 와글와글 갇힌다면 어떨까요? … 판사님은 분명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저를 구해주실 거예요. 글로벌 록다운은 동물을 학대하고 착취하며 죽이는 것이 합법인 인간 중심적 제도를 거부하는 위한 실천이었습니다.” 이솔 활동가는 비질 활동을 소개하면서 동영상을 틀었다. ‘우리가 너를 가두었다. 너의 자유를 빼앗았다…우리가 숲을 태웠다. 너의 집을 빼앗았다’ 음악과 가사가 흐르자, 여기저기서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비질은 도살장 앞에 서서 끌려가는 동물의 고통을 인간이 위로하는 의식이다. 방청객의 상당수는 비질을 참여해 본 적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슬픔의 크기는 경험에 비례한다. 김향기 활동가는 한두 마디도 못하고 울음부터 터뜨렸다. “이 순간은 제가 오래전부터 염원해왔던 것”이었으며 “피해자(동물)들을 대신하여 이 자리에 섰다”는 말로 간신히 최후 변론을 시작할 수 있었다. _______
동물권과 동물복지는 양립 불가능한가 이런 재판은 처음이었다. 법정은 눈물을 훔치는 손짓과 소리 낮춘 탄식으로 가득했고, 냉정함을 유지한(혹은 유지하려고 노력한) 이는 판사와 속기사, 법정 경위 그리고 기자뿐이었다. 디엑스이는 미국 샌프란시코에서 2013년 시작하여 세계로 확산한 행동주의 동물권 활동가 네트워크다. 2010년대 가장 크게 성장한 동물운동을 꼽으라면, 단연코 디엑스이일 것이다. 급진적 행동주의를 표방하는 점에서 지난 세기말 선풍을 일으켰다가 쇠락한 동물해방전선(ALF, 영화 <옥자>에 등장했다)과 비슷하지만, 공장식 축산의 권력자뿐만 아니라 소비자에게도 공격적인 성찰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다르다. (▶▶관련 기사 ‘그들은 진정한 동물의 대변자였을까’)
16일 오후 수원 지방법원 앞에서 이찬 변호사(왼쪽)와 박세훈 변호사(오른쪽)가 재판 직후 참석자들에게 재판 경과를 설명하고 있다. 남종영 기자
강정마을 사건을 보라 다시 법으로 돌아가 보자. 안타깝게도 이 사건의 법적 쟁점은 피고인들이 비판했던 공장식 축산이 아니라 직접행동 과정에서 벌어진 결과인 네 시간 동안의 업무방해다. 업무방해죄의 구성 요건은 위력의 행사다. 네 명의 활동가가 결박하고 드러누워 영업을 막았는데, 그들이 행동에 나선 이유가 위법성이 조각될 만한 것이냐의 여부다.
한 참석자가 재판 과정 중에 그린 그림을 참석자들에게 보여주고 있다. 남종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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