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전북 부안군 줄포면 신리 한 오리농장에서 방역당국 관계자들이 오리들을 살처분하기 위한 작업을 하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저는 여기에 있지만, 아내가 여전히 소를 키우고 있어요. 어느 날 전화를 해서 울어요.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소 두마리가 결핵 진단을 받았다고 소를 매몰해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가축을 매몰한다는 건, 경제적인 문제, 환경적인 문제도 따르지만 그 자체, 생명을 매몰했다는 데서 오는 인간성 파괴의 충격에서 견디기가 힘들어요.” 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제1세미나실 국회 유일 농업인 출신인 김현권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최근 자신의 경험을 풀어놓자 좌중이 숙연해졌다. 다행히 김 의원의 소는 재검사를 받고, 살처분 처리되지 않았지만 김 의원은 그때의 경험을 생각하면 머릿속이 아득해지는 듯했다.
9일 오후 2시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세미나실에서 열린 ‘생명을, 묻다’ 토론회에 참여한 발제자와 토론자들이 발표를 하고 있다. 신소윤 기자
이날 열린 토론회 ‘생명을, 묻다’는 가축 살처분 실태와 쟁점을 진단한 발제와 토론이 이어졌다. 이정미 정의당 대표, 표창원, 송갑석 더불어 민주당 의원 등을 비롯해 화우공익재단, 포럼 지구와 사람, 재단법인 동천, 사단법인 선 등이 주최 측으로 참여했다.
7천만 마리, 2조 1917억원. 2011년부터 2017년까지 조류인플루엔자(AI) 등 가축전염병으로 살처분한 마릿수와 그에 따라 정부가 국비로 농가에 지급한 보상금 규모다. 토론회에 참가한 발제자와 토론자들은 7천만 마리 뒤에 숨어 있는 동물들의 아비규환과 살처분 현장에 투입된 사람들의 정신적 고통, 생태계의 파괴를 말했다. 더불어 매해 2천억원 이상씩 지출되는 살처분 비용으로 다른 대안을 논의할 수 없을지 논했다.
우리는 왜 살처분을 할까? 토론자로 나선 박종무 평화와생명동물병원장은 공장식 축산의 악순환을 지적했다. 박 원장은 “오늘날 공장식 축산은 구조적으로 생산비 중 사료의 비중이 높고, 그밖에 고정비용이 많아 이윤을 남기기 어려운 조건”이라서 “이윤을 남기려다 보니 규모가 더 커지고, 시간이 곧 비용이다 보니 전염병에 걸려 회전율이 저하될수록 막대한 경제적 손실을 보기 때문에” 최대한 빨리 초기화로 돌아가려 살처분을 실시한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박 원장은 “이윤을 보존하기 위해 생명을 수단으로 간주할 수밖에 없는 반생명적 시스템은 지양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함태성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상시화’와 ‘토착화’의 경향을 보이는 전염병 상황에서 대규모로 획일적으로 진행되는 살처분 집행 과정의 문제점을 들었다. 구제역이나 AI 감염 여부와 상관없이 3km 이내 모든 농장의 소·돼지와 가금류를 죽이는 예방적 살처분을 비롯해 동물의 고통을 최소화하지 못한 집행 방식, 도살 과정에서 오는 참여자들의 정신적 트라우마, 토양 및 지하수 오염 등 2차 피해 등이 그것이다.
매년 수천억 원의 돈을 쓰면서 사람과 동물을 비명을 반복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는 없을까? 김영환 동물법비교연구회 연구원은 AI로 인한 경제적 손실만 따져도 연평균 2987억원에 이르는데, 여기에 반영되지 않은 가치(환경오염, 트라우마를 겪는 사람들의 정신적 훼손 등)를 더하면 그 액수는 환산하기 어려워진다. “연간 2천억원 이상의 비용을 동물 복지를 위한 비용으로 사용한다면 우리가 막을 수 있는데 막지 못하고 있는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2014년 충북 음성군의 한 닭 농장. 이 농장은 AI 발생지역 반경 3km 이내 지역에 위치해 농장 닭 3만 여 마리가 살처분 됐다. 살처분이 끝나 텅 빈 계사. 신소영 기자
어디서부터 바로잡아야 할까? 우희종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 학장은 근원적인 문제로 돌아가 재고할 것을 제안했다. “가축도 그들답게 살아야 할 권리가 있고, 국제적으로 각 동물의 살처분 규정이 부족하나마 마련돼 있지만, 국내에서는 시급성을 이유로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심지어 생매장까지 이뤄졌다”며 국내 살처분 과정의 문제를 지적했다. 우 교수는 살처분 사태를 해결하려면 생산자나 정부의 접근을 넘어 공급자를 변화시키는 소비자의 태도와 선택이 변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반 소비자가 생명 존중과 동물 복지 의식이 높을수록, 그리고 “통증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이에 대한 공감 능력이 뒤따를 때” 관련 정책과 법 제도 마련도 가능해지리란 것이다.
신소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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