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이 움직이기도 어려운 기존의 공장식 사육 방식을 버리고 동물친화적인 사육 방식을 채택한 생협의 양계장 모습. 아이쿱생협 제공
경기도에서 산란계 농가를 운영하는 한 농장주는 28일 동물복지형 농장을 확대한다는 정부 발표를 듣고 한숨부터 쉬었다. 동물복지형으로 변화해야 한다는 것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대책이 마련되기 전까지는 케이지 밀집 사육을 포기할 엄두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제까지 정부는 달걀값이 오르면 경제에 부담된다고 달걀 1개 생산비를 100원대에 맞추라고 해왔다. 올라가는 생산 단가를 누가 책임져주겠나.”
그의 말대로 일반 케이지 농가와 동물복지형 농가의 생산비 단가는 2~3배 차이가 난다. 통계청 조사 결과, 달걀 1개 평균 생산 단가는 97원 정도이지만, 동물복지형 농가의 달걀 생산비는 250~300원이라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300평 규모의 이 농가에서는 현재 10만마리의 닭을 키울 수 있는데 동물복지형 농장으로 전환하면 6천마리밖에 키울 수 없게 된다. 또 케이지를 벗어난 닭은 많이 움직여 사료값이 더 많이 드는 대신 산란율은 60~70%로 떨어진다. 거기에 관리비와 토지값 등이 더 들어가니 부담이 더 는다.
살충제 달걀 사건으로 정부가 부랴부랴 대책을 내놓았지만, 세부 내용은 아직 빠져 있다. 신규 진입 농가엔 동물복지형 축사를 의무화하고, 케이지 농가가 동물복지형으로 전환할 경우 직불금(2천만원 한도), 현대화 자금 등을 우선 지원한다고 밝혔다. 이렇게 해서 동물복지형 농가 비율을 현재 8%에서 2025년 30%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다. 하지만 공장식 대량 생산으로 싼 달걀 가격을 버텨온 케이지 농가가 동물복지형으로 전환하기는 쉽지 않다.
유럽연합(EU)은 2012년 일반 케이지 사육은 이미 중단하기로 했지만, 모든 케이지 사육을 포기하진 못했다. 2013년 기준 유럽연합의 산란계 닭 사육 형태를 보면 유기농 사육, 자연방사형을 포함해 케이지 없이 닭을 자유롭게 풀어두는 사육은 전체의 42.5%에 불과했다.
반면 절반 이상이 확장형 케이지(수십마리의 닭을 함께 넣은 넓은 케이지) 사육이었다. 농림축산식품부 이상혁 축산환경복지과장은 “우리도 이번 대책에 동물복지형 축사 형태에 개방형 케이지(닭이 케이지 밖을 나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구조)를 포함했다. 방목만 요구하기에는 현실적이지 않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정책적 유도와 함께 유통 과정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말한다. 유럽연합은 법적 필수조건 이상의 기준을 갖춘 농가에 재정적 지원을 했다. 또 환경오염이나 동물의 고통 등 외부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이 클 경우 더 많은 세금을 부과했다. 동물복지형 농가 비율이 가장 높은 영국에서는 농가 소득세를 감면하고 동물복지인증식품에 부가가치세를 낮게 매겨 가격경쟁력을 갖추도록 했다.
유통업체도 동물복지 달걀의 확산에 힘을 보탰다. 오스트리아의 대부분 슈퍼마켓에서는 일반 케이지 달걀을 팔지 않았다. 스웨덴의 마트도 방목해 키운 달걀만 팔았다. 특히 스웨덴에서는 대형유통업체가 모두 참여했다.
한국의 경우 소비자가 정책과 사회 인식 변화를 견인하는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쓴소리도 있다. 먹을거리 안전 문제도 중요하지만, 동물 복지를 강조하는 사회 분위기를 만들지 못했다는 반성이다.
반면 유럽 최대 달걀 생산지 중 하나인 네덜란드에서는 확장형 케이지마저도 소비자들 반대로 사라지는 추세다. 아무리 확장됐다 해도 닭이 케이지 밖에서 활동할 수 없는 확장형 케이지는 동물복지형이 아니라는 생각에서다. 네덜란드는 확장형 케이지에서 생산하는 달걀은 가장 낮은 3등급으로 가공용으로만 사용하고 있다.
김상호 국립축산과학원 가금연구소 연구관은 “최근 국내 소비자 6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해보니 동물복지형 달걀을 사 먹겠다고 하면서도, 막상 가격을 알려주면 사겠다는 대답이 절반으로 떨어졌다. 조금 비싸더라도 동물복지형 달걀을 사 먹겠다는 소비자의 의지가 있어야 생산자가 동물복지형 사육 형태로 유입되기 쉬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끝>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 임세연 교육연수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