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애니멀피플 생태와진화

원주민 언어와 함께 사라지는 전통 약초 지식

등록 2021-06-14 15:52수정 2021-06-14 16:31

[애니멀피플]
75%가 한 가지 언어로만 약효 구전…금세기 말까지 7400개 언어 중 30% 사라질 전망
원주민에게 주변 식물은 살아있는 약국이다. 약용식물에 관한 구전된 지식은 언어와 함께 사라질 위기에 놓였다. 자생식물과 원주민의 언어를 약품으로 형상화한 그림. 호드리구 카마한리어 외 (2021) PNAS 제공
원주민에게 주변 식물은 살아있는 약국이다. 약용식물에 관한 구전된 지식은 언어와 함께 사라질 위기에 놓였다. 자생식물과 원주민의 언어를 약품으로 형상화한 그림. 호드리구 카마한리어 외 (2021) PNAS 제공

아마존 상류에 있는 탐보파타 원주민 마을의 신망 받는 주술사이자 치유자였던 돈 이그나시오(92)는 최근 코로나19에 감염돼 숨졌다. 그는 페루에서도 가장 생물다양성이 높은 곳으로 꼽히는 이곳 아마존 상류 열대우림에서 자라는 어떤 식물에 어떤 약효가 있는지 훤히 꿰고 있었다. 얼마 전 그의 구술을 책으로 남겨놓지 않았다면 수천 년 동안 구전돼 온 그의 방대한 약초 지식은 지구에서 영영 사라질 뻔했다.

소수언어가 사라지면서 독특한 의학지식이 상실될 우려가 크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원주민의 소수언어는 주변의 생물다양성을 ‘살아있는 약국’으로 삼아 식물의 의학적 효능을 자세히 설명하는 데 쓰인다. 그러나 1900개 이상의 언어는 사용자가 1만명 미만일 정도이고 그나마 개발과 벌채, 기후변화, 코로나19 등 새로운 위협이 잇따라 유엔은 금세기 말까지 세계의 7400여 언어 가운데 30% 이상이 사라질 것으로 내다본다.

원주민의 주술사이자 치유자였던 돈 이그나시오의 생전 모습. 코로나19로 사망하기 전 자신의 약초 지식을 구술했다. 사진가 모신 카스미 인스타그램 갈무리
원주민의 주술사이자 치유자였던 돈 이그나시오의 생전 모습. 코로나19로 사망하기 전 자신의 약초 지식을 구술했다. 사진가 모신 카스미 인스타그램 갈무리

호드리구 카마한리어 스위스 취리히대 생물학자 등은 토착 약초 지식과 개별 언어의 관계를 평가한 결과 “약초 자체의 상실보다 언어가 사라지는 데 따른 의학지식의 손실이 훨씬 더 심각하다”는 결론을 얻었다. 연구자들은 과학저널 ‘미 국립학술원 회보’(PNAS) 최근호에 실린 논문에서 북미, 아마존 북서부, 뉴기니 등 3개 지역을 대상으로 236개 원주민 언어에 나타난 약초 3597종과 1만2495가지 약효를 분석했다.

카마한리어 박사는 “그 결과 약초와 관련한 의학지식 대부분은 독특해 특정 언어로만 알려진 것으로 나타났다고 이 대학 보도자료에서 말했다. 어떤 식물을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쓰는지는 대개 특정한 문화에 하나의 언어로만 간직돼 있다는 뜻이다.

브라질 리오 브란코 원주민이 식물에서 얻는 전통 약물 라페. 언스플래시 제공
브라질 리오 브란코 원주민이 식물에서 얻는 전통 약물 라페. 언스플래시 제공

이런 지식에는 식물의 유액으로 곰팡이 감염을 치료하고 나무껍질로 소화불량을 치료하며 식물 열매로 호흡기 질환을 누그러뜨리는 것 등이 포함돼 있다. 질병 치료뿐 아니라 천연 흥분제나 환각제 등도 의학지식으로 간주된다.

구체적으로 아마존 북서부에서 의학지식의 91%, 북미에서 73%, 뉴기니에서 84%가 하나의 언어에서만 나타났다. 게다가 이런 독특한 지식을 간직한 언어의 상당수는 사라질 위기에 놓여 그 비중이 아마존에서 100%, 북미에서 86%, 뉴기니에서 31%에 이르렀다.

마을의 ‘살아있는 약국’을 내려다보는 아마존 우쿠나 원주민. 호드리구 카마한리어 제공
마을의 ‘살아있는 약국’을 내려다보는 아마존 우쿠나 원주민. 호드리구 카마한리어 제공

이처럼 상당수 독창적인 의학지식이 사라져 가는 언어로 남아있지만 약용으로 쓰이는 식물의 5% 미만이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이 구분한 멸종위기종이었다. 멸종위험은 식물보다 소수언어에 더 심각하다는 뜻이다.

연구자들은 원주민이 판단한 약효가 서양의학의 기준과 일치하지는 않지만 많은 경우 식물의 효과는 나중에 밝혀진다고 밝혔다. 현재까지 고등식물에서 활성 성분을 조사한 종은 전체의 약 6%에 지나지 않는다.

북미 태평양 해안의 주목. 이 나무에서 추출한 택솔은 항암제 원료이다. 제이슨 홀링거,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북미 태평양 해안의 주목. 이 나무에서 추출한 택솔은 항암제 원료이다. 제이슨 홀링거,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연구자들은 “금세기 말까지 토착 언어의 30%까지 사라진다면 인류의 의학적 발견 가능성을 크게 위축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유엔은 2022년부터 10년 동안을 ‘국제 토착 언어 10년’으로 정해 사라질 위기에 놓인 많은 원주민의 소수언어에 대한 세계의 경각심을 불러일으킬 예정이다.

인용 논문: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DOI: 10.1073/pnas.2103683118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애니멀피플] 핫클릭

1600㎞ 날아가 날개 부러진 채 발견된 21살 매의 노익장 1.

1600㎞ 날아가 날개 부러진 채 발견된 21살 매의 노익장

노화의 3가지 수의학적 지표…우리 멍냥이는 ‘어르신’일까 2.

노화의 3가지 수의학적 지표…우리 멍냥이는 ‘어르신’일까

새끼 지키려, 날개 부러진 척한다…댕기물떼새의 영리한 유인 기술 3.

새끼 지키려, 날개 부러진 척한다…댕기물떼새의 영리한 유인 기술

아부지 차 뽑았다, 히끄야…첫 행선지는? 4.

아부지 차 뽑았다, 히끄야…첫 행선지는?

서두르지 마세요…반려동물의 ‘마지막 소풍’ 배웅하는 법 5.

서두르지 마세요…반려동물의 ‘마지막 소풍’ 배웅하는 법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