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랑초파리는 실험실의 모델 동물로 많이 연구됐지만 야생동물로서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곤충의 장거리 이동 행동을 연구하는 새로운 모델이 될 수 있을까. 캘리포니아 공과대학 동영상 갈무리
실험실에서 요긴한 모델 동물로 쓰이고 집안에선 과일 껍질에 덤벼드는 곤충인 초파리는 한 자리에서 붕붕댈 것 같지만 한 번에 15㎞까지 장거리 이동을 할 수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는 자기 몸의 6000만 배 거리를 비행하는 것으로 사람으로 친다면 하루에 북극에서 적도까지 거리인 1만㎞를 이동하는 셈이다.
캐서린 레이츠 등 미국 캘리포니아공대 연구진은 모하비 사막에서 수십만 마리의 노랑초파리를 날려 보낸 뒤 유인 덫으로 포획하는 실험을 거듭해 이런 결과를 얻었다고 과학저널 ‘미 국립학술원 회보’ 최근호에 실린 논문에서 밝혔다. 연구자들은 “곤충의 장거리 이동은 한 지역에서 다른 지역으로 생물량을 운반하는 것으로 지구 차원의 생태계에 영향을 끼치는 행동”이라고 밝혔다.
연구 책임자인 마이클 디킨슨 교수는 “이 작은 초파리의 확산 능력은 지금껏 과소평가됐다. 이들은 대부분의 철새가 하룻밤에 가는 것보다 멀리 이동한다. 실험실의 모델 동물인 초파리는 연구실 밖에서는 거의 연구되지 않아 이런 놀라운 비행능력을 보유하고 있는지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고
이 대학 보도자료에서 말했다.
해마다 알래스카에서 뉴질랜드까지 논스톱 비행을 하는 큰뒷부리도요. 폴 반데벨드,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실제로 큰뒷부리도요는 알래스카에서 뉴질랜드까지 쉬지 않고 날지만 9일에 걸쳐 비행한다(▶
태평양 1만2천 킬로 논스톱 비행 기록 도요새). 사람은 울트라마라톤에서 쉬지 않고 80시간 동안 560㎞를 달린 기록이 있다.
초파리의 확산 능력은 오랜 수수께끼였다. 1940년대 초파리를 연구하던 진화유전학자 테오도시우스 도브잔스키는 수천㎞ 떨어진 초파리 무리가 유전적으로 동일한 사실을 밝혀내고 깜짝 놀랐다.
1970년대에 과학자들은 과연 초파리에게 장거리 이동능력이 있는지 알아보려고 형광물질을 뿌린 초파리 수십만 마리를 데스밸리에 풀어놓는 실험을 했다. 몇 마리가 15㎞ 밖의 상한 바나나 덫에 도착했지만 바람에 날려왔는지 우연인지는 알 수 없었다.
캘리포니아공대 연구자들 이전에 재현실험에 나선 사람은 없었다. 연구자들은 캘리포니아 모하비 사막의 말라버린 호수 바닥에서 한 번에 3만∼20만 마리의 초파리를 바람 조건에 따라 여러 차례 날려 보내는 실험을 했다.
당분만 제공하고 단백질을 주지 않은 초파리는 허기를 느껴 1㎞ 밖에서 풍기는 먹이에 끌리게 된다. 산자이 아카리야,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방사 지점에서 1㎞ 떨어진 곳에 10개의 유인 덫을 원형으로 배치했다. 들어올 수만 있고 나가지 못하는 구조의 덫에는 초파리가 거부하기 힘든 발효 사과즙과 샴페인 효모가 냄새를 풍기도록 했다. 사막에는 애초 초파리가 살지 않았고 실험에 쓰인 초파리는 야생에서 포획해 증식한 개체로 유전자 변형을 하지 않은 것들이었다.
실험을 통해 초파리가 바람에 어떻게 영향을 받으면서 먹이 냄새에 이끌리는지 정량적으로 드러났다. 초파리는 한 번 비행에 12∼15㎞ 거리를 이동했는데 이는 길이 2.5㎜인 작은 곤충이 자기 몸길이의 6000만 배를 난 셈이다.
비행 방법도 예상 밖이었다. 비행을 위한 칼로리를 얻을 수 있는 당분은 충분히 공급받았지만 단백질은 전혀 섭취하지 못해 허기진 상태였던 초파리들은 무작정 날아다니며 먹이를 탐색하지 않았다.
디킨슨 교수는 “먹이가 없는 낯선 곳에서 야생동물은 어떻게 행동할까. 어딘가 과일이 있을 것이란 기대로 이리저리 마구 날아다니진 않았다. 초파리들은 아마도 ‘좋아 이 방향을 잡아서 쭉 가보자. 뭔가 있지 않겠어?’라고 생각하는 듯했다”고 설명했다.
연구자들은 초파리들이 태양을 랜드마크로 삼아 처음 정한 방향으로 일직선으로 날아가다가 냄새를 맡으면 그리고 방향을 돌렸다. 약한 바람이 불면 밀리면서 원래 방향을 유지했지만 바람이 세지면 바람에 떠밀리는 쪽을 택했다. 순풍을 탄 초파리는 한 번에 27㎞까지 날아가기도 했다.
이제까지 장거리 이동하는 곤충은 북미 제왕나비가 대표적이었다. 그러나 다른 많은 곤충도 이동한다. 초파리는 그런 예이다. 스티브 코레이,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연구자들은 “초파리가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대양 섬인 하와이나 셰이셀 군도에도 서식하게 된 것은 높은 상공의 바람을 타고 더 멀리 이동했기 때문”이라며 “작은 곤충의 이런 장거리 이동은 침입종의 확산에도 기여한다”고 밝혔다.
인용 논문: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DOI: 10.1073/pnas.2013342118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