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대와 아열대 바다에 널리 분포하는 큰지느러미흉상어는 바다 표면 가까이서 주로 사냥하지만 심해 오징어 사냥에도 나서는 사실이 밝혀졌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수심 300∼1000m의 심해에 사는 몸길이 13m의 대왕오징어에게는 향고래를 빼면 천적이 거의 없다. 그러나 대왕오징어를 노리는 포식자 목록에 대형 상어를 추가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야니스 파파스매슈 미국 플로리다 국제대 상어 생태학자 등은 ‘어류 생물학 저널’ 최근호에 실린 논문을 통해 큰지느러미흉상어(장완흉상어)와 대왕오징어로 추정되는 심해 오징어가 조우한 첫 과학적 증거를 제시했다.
큰지느러미흉상어는 지느러미 끄트머리가 희고 둥근 3∼4m까지 자라는 상어로 주로 수심 200m 이하의 바다 표층에서 물고기나 오징어를 사냥한다. 그런데 2019년 11월 하와이 바깥 바다에서 2m 길이의 수컷 큰지느러미흉상어 옆구리에서 마치 철길처럼 두 줄로 둥근 상처가 이어진 상흔이 발견됐다.
큰지느러미흉상어 머리 아래부터 등지느러미 아래까지 두 줄로 대왕오징어 빨판이 붙었던 흔적이 남아있다. 빨판은 골프공 크기였다. 야니스 파파스매슈 외 (2020) ‘어류 생물학 저널’ 제공.
상흔을 자세히 조사한 결과 거대 오징어의 빨판 자국인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자들은 “빨판의 크기와 모양, 서식 수심 등을 고려할 때 상처를 낸 연체동물은 대왕오징어나 다른 두 종의 심해 오징어일 가능성이 크다”고 논문에서 밝혔다.
대왕오징어는 전 세계 열대바다에 서식하며 몸길이만 2m, 다리까지 포함하면 12∼13m까지 자란다. 주요 천적은 향고래로, 뱃속에서 다량의 대왕오징어 부리가 발견되거나, 피부에 남은 빨판 흔적이 포식 과정의 격렬한 싸움을 보여주기도 했다.
향고래와 대왕오징어의 싸움을 묘사한 미국 자연사박물관의 그림.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대왕오징어의 팔과 긴 촉수 안쪽에는 지름 2∼5㎝의 원형 빨판 수백개가 줄지어 늘어서 있다. 빨판 안쪽에는 키틴질의 날카롭고 예리한 톱니가 주변을 둘러싸고 있어 들러붙은 상대에 상처를 남긴다.
연구자들은 큰지느러미흉상어가 바다 표층에서 주로 서식하지만, 종종 1000m가 넘는 심해로 잠수한다는 데 주목했다. 이 상어는 들쇠고래 무리와 만나면 심해로 잠수한다. 들쇠고래는 깊은 바다에서 오징어를 사냥한다.
연구자들이 큰지느러미흉상어 6마리에 위성추적장치를 붙여 조사한 결과 수심 250∼1177m 범위로 잠수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런 행동을 연구자들은 “초음파를 이용해 심해 오징어의 위치를 파악하는 들쇠고래를 따라다니며 상어가 심해 오징어를 사냥하거나 사냥 뒤 남긴 찌꺼기를 먹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왕오징어의 빨판. 수백개의 빨판 가장자리에는 날카로운 키틴질 톱니가 달려 부착한 피부에 상처를 낸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향고래 머리 부위에 대왕오징어 빨판이 남긴 상흔. 잡아먹히기 전 오징어의 저항을 보여준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이런 사실을 토대로 연구자들은 “큰지느러미흉상어 배에 생긴 흉터가 심해 오징어를 사냥할 때 오징어가 빨판으로 저항한 흔적일 가능성이 크다”고 결론 내렸다. 상어의 몸에 별다른 상처가 없고, 대왕오징어를 주로 사냥하는 향고래에도 비슷한 흉터가 남는 사실에 비춰 심해 오징어가 상어를 공격하기보다는 상어가 오징어를 사냥하다 상처를 얻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았다.
연구자들은 “표층 상어와 심해 오징어의 만남이 어떤 성격인지 얼마나 잦은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바다 표층과 중층 생태계가 (먹이그물을 통해) 서로 연결돼 있음을 이번 사례로 알 수 있다”고 논문에 적었다. 큰지느러미흉상어가 어디서 사냥하는지 보여준 이번 관찰은 상어 수프용 지느러미 채취로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의 적색목록에 ‘위급’ 종으로 규정된 이 희귀 상어를 보전하는 데도 중요한 정보가 될 것으로 보인다.
몸길이만 2m에 이르는 대왕오징어. 일부 고래와 상어의 중요한 먹이이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인용 저널:
Journal of Fish Biology, DOI: 10.1111/jfb.14415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