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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생태와진화

표범에 젖꼭지 물린 아시아사자의 ‘모성애’

등록 2020-03-03 17:07수정 2020-03-03 17:11

[애니멀피플]
보통은 죽이는 경쟁 관계, 모성 본능에 눈멀었을 가능성
아시아사자 모자 사이에서 편안한 한때를 보내는 표범 새끼. 경쟁자임에도 어미는 자기 새끼처럼 잘 돌봤다. 디라지 미탈 제공.
아시아사자 모자 사이에서 편안한 한때를 보내는 표범 새끼. 경쟁자임에도 어미는 자기 새끼처럼 잘 돌봤다. 디라지 미탈 제공.

야생동물도 같은 종 또는 종의 벽을 뛰어넘어 남의 새끼를 기르는 ‘입양’ 행동을 한다. 그러나 경쟁 관계인 최상위 포식자 사이에서라면 상대 새끼를 돌보기는커녕 물어 죽이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사자 어미가 경쟁 관계인 표범 새끼를 상당 기간 입양해 기른 사실이 밝혀졌다. 인도 서부 구자라트주 기르 국립공원의 아시아사자 암컷이 고아가 된 어린 표범 새끼를 1달 반 동안 제 새끼와 똑같이 돌봤다. 새끼 표범은 선천적인 질환으로 목숨을 잃기까지 어미의 젖을 빨고, 사냥감을 함께 먹고, 이복형제의 얼굴에 펀치를 날리며 놀았다.

디라지 미탈 기르 숲 관리자 등 인도 연구자들은 생태학 과학저널 ‘에코스피어’ 2월 호에 실린 논문에서 사자의 표범 새끼 입양 내용을 상세히 보고했다. 연구자들은 2018년 12월 6년째 행동을 관찰하던 암사자가 자신의 새끼 2마리와 함께 표범 새끼를 데리고 있는 모습을 목격했다.

입양된 표범은 눈이 흐리고 푸른 기가 돌아 태어난 지 2달이 안 된 것으로 추정됐다. 디라지 미탈 제공.
입양된 표범은 눈이 흐리고 푸른 기가 돌아 태어난 지 2달이 안 된 것으로 추정됐다. 디라지 미탈 제공.

표범은 눈이 아직 푸른 빛으로 흐려져 있는 2달도 안 된 어린 수컷이었다. 연구자들은 “같은 지역에 서식하는 경쟁하는 고양잇과 동물이었지만 오랫동안 돌보는 모습이 아주 특이해 행동학적으로 흥미로운 사례로 보였다”고 논문에 적었다.

자신의 유전자를 더 많이 퍼뜨리는 행동만이 자연의 선택을 받는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입양’은 시간과 에너지를 잡아먹어 결국 자기에게 손해를 끼치는 백해무익한 행동이다.

그렇지만 같은 종 사이에서 그런 행동은 종종 보고된다. 어떤 치타 어미는 고아가 된 수컷 치타 새끼를 입양해, 나중에 자기 아들과 더 큰 동맹을 이루도록 돕는 것으로 밝혀졌다. 처음 번식에 나선 미숙한 어미가 그런 실수를 하기도 한다.

드물게 다른 종 새끼를 데려다 기르기도 한다. 카푸친 원숭이 가족이 사람이 넣어준 어린 마모셋 원숭이를 입양해 기른 보고가 있고, 야생에서 큰돌고래가 고양이고래의 새끼를 자기 새끼와 함께 기른 사례도 있다.

그렇지만 상대가 적대적인 경쟁자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사자와 표범이 그런 예인데, 사자는 표범의 먹이를 빼앗고 새끼를 만나면 죽인다. 표범도 사자 새끼를 공격해 죽이기도 한다.

나이는 비슷하지만, 덩치는 곱절이나 큰 사자 새끼와 노는 표범 새끼. 디라지 미탈 제공.
나이는 비슷하지만, 덩치는 곱절이나 큰 사자 새끼와 노는 표범 새끼. 디라지 미탈 제공.

사자가 표범 새끼를 돌본 사례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7년 탄자니아에서 추적 관찰 중이던 5살 난 암사자가 태어난 지 3주쯤 된 어린 표범에게 젖을 먹이는 등 돌보는 모습이 목격됐다. 이 암사자는 당시 새끼를 갓 낳은 상태였다. 연구자들은 “당시 암사자와 새끼 표범의 만남이 하루밖에 지속하지 않았기 때문에 입양이라고 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왜 인도의 암사자는 장차 치명적 경쟁자가 될 수 있는 표범 새끼를 돌본 걸까. 연구자들의 추정은 이렇다. 첫째, 암사자가 5∼6살로 어리고 두 번째 출산으로 경험이 적었다. 첫 번째 출산에서는 새끼가 모두 일찍 죽었다.

둘째, 일종의 모성애가 작용했다. 연구자들은 “젖을 먹이는 상태였던 암사자의 모성적 본능과 호르몬 분비로 인해 ‘새끼가 이상하게 점박이’라는 인식이 사라지거나 억눌렸다”고 보았다.

아시아사자는 암컷과 수컷이 분리돼 따로 소규모의 집단을 이루고, 새끼를 낳은 암사자는 몇 달 동안 홀로 지내는 것도 입양을 가능하게 만든 요인이라고 연구자들은 분석했다. 다른 사자가 있었다면 새끼 표범은 죽음을 피하지 못했을 것이다.

연구자들은 또 새끼일 때 사자와 표범이 비슷하다는 점도 작용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둘의 소리, 몸짓, 젖 조르는 동작, 사자 새끼의 반점 등이 본능적 돌봄을 유도했다는 것이다.

어미 사자가 사냥한 먹이를 먹는 새끼 표범. 어미는 이 새끼가 표범인지 알고 있었을까? 디라지 미탈 제공.
어미 사자가 사냥한 먹이를 먹는 새끼 표범. 어미는 이 새끼가 표범인지 알고 있었을까? 디라지 미탈 제공.

표범 새끼가 고아가 된 이유는 뭘까. 연구자들은 “사자 무리에 입양된 이튿날 같은 장소에서 늙은 암컷 표범을 보았는데, 이 표범의 생물학적 어미일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입양된 지 한 달 반 만에 물구덩이 주변에서 죽은 채 발견된 새끼 표범의 사인은 대퇴탈장으로 선천적인 질환이었고, 외상은 없었다. 연구자들은 “새끼가 선천적인 질환 때문에 어미로부터 버림받은 뒤 근처에 온 암사자에 입양됐을 수 있다”고 밝혔다.

인용 저널: Ecosphere, DOI: 10.1002/ecs2.3047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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