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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생태와진화

입맛 까다로운 코알라엔 ‘똥이 약’

등록 2019-08-23 16:48수정 2019-08-23 17:00

[애니멀피플]
다른 종 유칼리나무 소화 못 해, ‘대변 접종’으로 새 미생물군집 필요
유칼리나무에서 느긋하게 잠자는 코알라. 영양가 적고 독성이 큰 이 나무만 먹는 코알라는 소화를 하는 데 장내 미생물집단에 크게 의존한다. 게티이미지뱅크
유칼리나무에서 느긋하게 잠자는 코알라. 영양가 적고 독성이 큰 이 나무만 먹는 코알라는 소화를 하는 데 장내 미생물집단에 크게 의존한다. 게티이미지뱅크
2013년 오스트레일리아 빅토리아주 케이프 오트웨이 국립공원에서 보호종인 코알라가 집단으로 굶어 죽는 사태가 벌어졌다. 1981년 복원한 무리가 산불·천적·질병이 없자 적정 밀도의 20배로 불어난 끝에 벌어진 참극이었다.

코알라는, 대나무만 먹는 자이언트판다처럼 유칼리나무만 먹는다. 이곳 코알라는 유칼리나무 속 가운데서도 ‘만나 검 나무’로 불리는 종만 고집한다.

그 바람에 국립공원의 만나 검 유칼리나무는 잎을 모조리 뜯겨 말라죽었고, 먹이를 잃은 코알라의 70% 이상이 아사하거나 비참한 모습을 보다 못한 동물복지 당국에 의해 안락사 됐다.

불어난 코알라에 잎을 뜯겨 가지만 앙상하게 남은 유칼리나무의 일종 만나 검 나무의 모습. 빅토리아주 환경, 국토, 물 및 계획국 제공.
불어난 코알라에 잎을 뜯겨 가지만 앙상하게 남은 유칼리나무의 일종 만나 검 나무의 모습. 빅토리아주 환경, 국토, 물 및 계획국 제공.
굶어죽어가는 코알라 바로 옆에는 또 다른 유칼리나무인 메스메이트 나무가 가득했지만 무성한 잎을 건드리지도 않았다. 메스메이트 나무만 먹는 코알라 무리는 따로 있었다. 코알라는 왜 이토록 치명적으로 까다로운 식성을 지니게 됐을까.

미캘라 블라이튼 오스트레일리아 웨스턴 시드니대 박사 등 호주 연구자들은 과학저널 ‘동물 미생물군집’ 최근호에 실린 논문에서 코알라의 위장 미생물군집 차이가 까다로운 식성을 낳는다는 사실을 밝혔다. 이들은 “멸종위기인 코알라를 새로운 서식지로 옮길 때는 그곳 유칼리나무를 소화할 수 있는 위장 미생물군집을 접종하는 것이 좋다”고 밝혔다.

오스트레일리아 고유 유대류 동물인 코알라는 포유류 가운데 식성이 가장 전문화한 부류에 속한다. 하루 20시간까지 자면서 거의 움직이지 않고 유칼리나무 1∼10종을 먹는다.

자이언트판다가 대나무만 먹는 것처럼 코알라는 유칼리나무만 먹는다. 그러나 유칼리나무에도 구성성분 차이가 있어 코알라의 식성은 먹는 나무에 따라 또 세분화한다. 아르노드 게이러드,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자이언트판다가 대나무만 먹는 것처럼 코알라는 유칼리나무만 먹는다. 그러나 유칼리나무에도 구성성분 차이가 있어 코알라의 식성은 먹는 나무에 따라 또 세분화한다. 아르노드 게이러드,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이런 느긋한 습성은 유칼리나무에 영양분이 부족한 데다 독성이 있기 때문에 생겼다. 코알라는 섬유질이 많은 유칼리나무 잎을 잔뜩 섭취한 뒤 큰창자에서 대장균에 의한 발효가 일어나 섭취 가능한 지방산이 생기기를 기다린다.

문제는 유칼리나무 사이에도 영양분 조성이 다르다는 점이다. 국립공원 코알라가 먹는 만나 검 나무는 비교적 단백질이 많고 소화가 잘되는 편이지만 독성이 강하다. 메스메이트 나무는 대조적으로 거친 섬유가 많다.

따라서 만나 검 나무를 먹는 코알라의 소화관 미생물군집은 작은창자에서 당분과 아미노산을 흡수한 뒤 큰창자에서 섬유질 발효 산물을 흡수하는 종으로 이뤄지지만, 메스에이트 코알라의 미생물군집은 주로 거친 섬유질을 발효해 영양분을 흡수하는 것들이 주류다.

연구자들은 “굶주린 코알라가 처음엔 메스메이트 나무를 먹었지만, 소화가 되지 않자 사흘 뒤부터 거들떠보지도 않게 된다”며 “그러나 메스메이트 나무를 먹는 코알라의 배설물 추출물을 먹였더니 9∼18일 사이에 장내 미생물군집이 새로운 유칼리나무를 소화할 수 있는 조성으로 바뀌었다”고 밝혔다.

대변 미생물군집 이식법(FMT)은 항생제가 안 듣는 만성 대장염에 잘 들어 장기 입원 환자에 널리 쓰인다. 또 과민성 대장염, 당뇨병, 만성피로증후군, 지방간, 비만, 알레르기 등에도 효과가 있는지 연구가 활발하다. 미국 식품의약청(FDA)은 2013년 사람의 대변을 생물학적 약제로 인정하기도 했다. ‘똥이 약’인 셈이다.

집단 아사 사태를 빚은 케이프 오트웨이 국립공원에 복원된 코알라 수컷이 만나 검 나무에 올라 있다. 빅토리아주 환경, 국토, 물 및 계획국 제공.
집단 아사 사태를 빚은 케이프 오트웨이 국립공원에 복원된 코알라 수컷이 만나 검 나무에 올라 있다. 빅토리아주 환경, 국토, 물 및 계획국 제공.
이번 연구는 사람과 달리 큰창자에서 거친 먹이를 소화하는 대형 초식동물의 보전에 유용한 도구가 될 것이라고 연구자들은 기대했다. 사람 등은 음식을 바꾸면 위장의 미생물군집이 곧 바뀐다. 그러나 연구자들은 거친 섬유질을 분해하는 미생물군집은 한 달 동안에도 바뀌지 않는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초식동물을 이주할 때 먹이를 소화할 미생물군집도 바꿔줘야 한다는 얘기다.

케이프 오트웨이 국립공원에서 생존한 코알라 400마리는 다른 곳에 이주했다. ‘대변 접종’을 통해 새 먹이에도 적응했다. 빅토리아주 환경 당국은 2016년 보고서에서 “코알라 200마리를 국립공원에 성공적으로 복원돼, 되살린 만나 검 나무 숲 120㏊에 서식하고 있다”고 밝혔다.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Michaela D. J. Blyton et al Faecal inoculations alter the gastrointestinal microbiome and allow dietary expansion in a wild specialist herbivore, the koala, Animal Microbiome (2019) 1:6, https://doi.org/10.1186/s42523-019-0008-0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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