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린은 긴 목을 이용해 큰키나무인 아카시아의 가장 꼭대기 새순을 따먹을 수 있다. 수컷 기린이 목을 이용해 상대와 겨루고 있다. 루카 갈루치,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기린은 생물학적으로 극단적인 형태를 갖췄다. 긴 다리와 목을 합치면 키가 4.3∼5.7m에 이른다. 같은 무게의 코뿔소보다 어깨높이만 2배 크다. 2∼2.4m에 이르는 거대한 목이 있어 반추동물 가운데 가장 무거운 동물이기도 하다.
기린의 걷는 모습도 특이하다. 앞발과 뒷발의 보조를 맞추어 양쪽을 번갈아 내밀며 성큼성큼 걷는데, 사자에 쫓길 때도 발놀림이 빨라지는 것 같지 않다. 꼿꼿이 세운 머리를 시계추처럼 앞뒤로 끄덕이는 모습도 두드러진다. 기린이 걷는 모습은 어쩐지 슬로모션으로 영상을 보는 느낌이 든다.
기린의 걸음걸이는 다른 사지보행 하는 동물과 어떻게 다를까. 영국 왕립수의대 연구자들은 동물원 바닥에 측정 판을 설치한 뒤 그 위로 기린들을 걷게 하는 일련의 실험과 모델 계산을 통해 이를 정량적으로 조사했다.
긴 목과 다리를 합치면 기린의 키는 5m를 훌쩍 넘기도 한다. 이런 특이한 모습에도 걷는 기본 역학은 다른 사지보행 동물과 동일한 것으로 밝혀졌다. 미로슬라프 두차체,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과학저널 ‘실험생물학 저널’ 최근호에 실린 논문에서 연구자들이 내린 결론은 뜻밖에도 “다른 동물과 그리 다를 것 없다”였다. 단지 키가 너무 클 뿐, 기능적으로 기린의 걸음에 다른 동물과 구별되는 특이한 것은 없다는 것이다.
측정 결과 기린이 걸으면서 체중을 옮길 때, 앞발이 거의 모든 무게를 지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머리와 목의 체중이 앞발에 걸리기 때문인데, 네 발로 걷는 다른 포유류도 마찬가지다.
또 걸을 때는 초속 1m의 느린 속도를 유지했다. 달릴 때도 다리를 빨리 놀리는 것이 아니라 보폭을 넓혔다. ‘실험생물학 저널’은 이 연구 결과를 소개하면서 “이렇게 느린 속도를 고집하는 것은 긴 다리를 더 빨리 움직일 때 훨씬 많은 에너지가 들기 때문”이라며 “다른 동물도 기린 크기로 늘리면 비슷하게 걸을 수밖에 없다”라고 설명했다. ‘기린은 특별히 느린 게 아니라 긴 다리로 최선을 다하는 것’이라는 얘기다.
긴 목은 물 마실 때 가장 불편해 어정쩡한 자세를 해야 한다. 스티브 가르비,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앞뒤로 끄덕이는 목의 움직임은 다리의 움직임과 따로 노는 양상을 보였다. 이런 ‘탈동조’ 현상에 대해 연구자들은 “무거운 고개를 자연적인 주기를 벗어나 흔드는 데는 너무 에너지가 많이 들기 때문에 고개의 관성적인 움직임에 맞춰 발걸음을 옮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연구자들은 결론적으로 “기린은 형태적으로 아주 특별하지만, 사지보행을 하는 다른 대부분의 포유동물이 느리게 걸을 때와 마찬가지 역학적 법칙으로 걷는다”라고 밝혔다.
■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Christopher Basu et al, The locomotor kinematics and ground reaction forces of walking giraffes,
Journal of Experimental Biology (2019) 222, jeb159277. doi:10.1242/jeb.159277
조홍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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