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니가 기다랗게 튀어나온 외뿔고래는 흰고래와 함께 북극해 주변에 서식하는 중형 고래이다. 보통 5∼10마리의 집단을 이루어 살지마나 여름철엔 500마리 이상의 큰 무리를 이루기도 한다. 미해양대기국(NOAA),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아직 생식이 가능한 나이에 폐경을 하는 인간과 일부 고래의 사례는 진화생물학 최대의 미스터리이다(관련 기사▶
사람과 범고래는 왜 중년에 폐경을 할까?). 이처럼 자신의 생식을 중단하고 수십 년 동안 자손이 자라는 것을 돕는 고래로는 이제까지 범고래와 들쇠고래가 확인됐다(흑범고래도 그렇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여기에 흰고래와 외뿔고래 등 2종이 추가된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샘 엘리스 영국 엑시터대 박사 등 영국 연구자들은 27일 발행된 과학저널 ‘사이언티픽 리포트’에 실린 논문에서 이런 사실을 밝혔다. 이번 연구로 폐경은 이빨고래 무리에서 적어도 3번 독립적으로 진화했음을 보여준다고 논문은 밝혔다(흰고래와 외뿔고래는 유전적으로 가까워 이들의 공통조상에서 폐경이 진화했을 수 있다).
흰고래(위)와 외뿔고래 모습의 비교. 유전적으로 가까우며 모두 북극해에 산다. A. 토르붐이 1920년 그린 그림이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폐경을 하는 것으로 밝혀진 고래 4종은 모두 수염고래와 대조적으로 원뿔형 이로 사냥하는 이빨고래 종류이며 고도의 사회성을 보인다는 공통점이 있다.
연구자들은 14종의 죽은 고래 표본을 조사한 결과 나이 든 흰고래와 외뿔고래 암컷에서 활동이 중단된 난소를 확인해 이런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다. 가장 먼저 사람 이외의 폐경이 발견된 범고래에서는 지난 40여년 동안 폐경이 진화한 다양한 원인이 연구됐다. 연구자들은 흰고래와 외뿔고래에서 그런 정보는 아직 없지만, 범고래와 마찬가지로 암컷이 나이가 들면서 점점 더 가까운 친척들과 함께 살아가는 사회구조를 이루고 있을 것으로 추정했다.
흰고래는 보통 10마리 정도가 모여 생활하지만 여름철에는 수백마리가 모여들기도 한다. 높은 소리로 소통해 ‘카나리아 고래’란 별명도 있다. 캐나다 허드슨만에 모인 무리이다. 앤스가 워크,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실제로 흰고래와 외뿔고래는 모두 북극해와 주변에 서식하는데 평소에 10마리 정도 함께 지내다가 여름철엔 수백 마리의 대규모 집단을 이루며, 사회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주 저자인 샘 엘리스 박사는 “폐경이 진화적으로 의미가 있으려면 생식을 중단할 이유와 그 후에도 살아갈 이유가 모두 타당해야 한다”고
이 대학 보도자료에서 말했다. 범고래에서 암컷은 나이가 들면 자식과 손주와 함께 모계 집단을 이뤄 평생을 산다. 나이 든 암컷이 생식을 계속할 경우 직계 자손과 먹이 등 자원을 두고 경쟁할 것이다. 따라서 생식을 중단하고 자식과 손주에게 생존 지혜를 전수하는 편이 유리하다는 것이다.
큰 무리를 이룬 외뿔고래.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사람도 이런 이유에서 폐경이 진화했다. 연구에 참여한 폐경 연구의 권위자인 대런 크로프트 교수는 “오늘날 사람은 조상이 살았던 조건과 너무나 달라져 인간의 행동을 연구하기가 어렵다”며 “이빨고래와 같은 다른 종들을 살펴봄으로써 이런 특이한 생식 전략이 어떻게 진화해 나왔는지 짐작할 수 있다”고 말했다.
■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Sam Ellis et al, Analyses of ovarian activity reveal repeated evolution of post-reproductive lifespans in toothed whales.
Scientific Reports, http://dx.doi.org/10.1038/s41598-018-31047-8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