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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생태와진화

미라 만드는 ‘최음제 식물’, 기생자에 다시 기생하는 이 덩굴

등록 2018-08-24 16:45수정 2018-08-24 23:24

[애니멀피플]
참나무에 혹 만들어 알 낳는 혹벌, 그 혹에서 양분 빠는 기생식물
애벌레는 당장 죽지 않고 결국 미라로, 기생자끼리의 새 먹이관계
혹벌이 식물에 기생해 애벌레를 기르는 혹에 기생식물이 흡반을 붙여 수분과 영양분을 빼앗아 가고 있다. 매튜 코머퍼드, 라이스대 제공.
혹벌이 식물에 기생해 애벌레를 기르는 혹에 기생식물이 흡반을 붙여 수분과 영양분을 빼앗아 가고 있다. 매튜 코머퍼드, 라이스대 제공.
혹벌이란 작은 기생말벌은 기발한 전략으로 번식 성공률을 높인다. 참나무 같은 숙주 식물에 독소와 특수 단백질을 섞어 알을 낳으면, 그 자리가 부풀어 오르면서 혹(충영)이 된다. 혹벌 애벌레는 가장 취약한 시기를 안전한 혹 속에서 숙주 식물이 제공하는 수액을 먹으며 자란다.

세계에 이런 혹벌이 1만3000여종이나 있다는 건 혹을 이용한 기생전략이 얼마나 성공적인지 잘 보여준다. 물론 성공이 언제나 계속되는 건 아니다. 다른 기생벌 가운데 혹을 관통하는 침으로 혹벌 애벌레에 자신의 알을 낳는 종들이 있다. 혹을 노린 또 다른 기생자가 최근 발견됐다. 놀랍게도 그 주인공은 식물이다.

식물의 혹을 이용해 애벌레의 안전을 꾀하는 혹벌의 일종.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식물의 혹을 이용해 애벌레의 안전을 꾀하는 혹벌의 일종.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참나무 잎 뒤에 혹벌이 알을 낳은 혹을 다닥다닥 붙여 놓았다. 스콧 이건, 매트 코머퍼드 제공.
참나무 잎 뒤에 혹벌이 알을 낳은 혹을 다닥다닥 붙여 놓았다. 스콧 이건, 매트 코머퍼드 제공.
세계의 열대지역에 널리 분포하는 ‘카시타 필리포르미스’(학명 Cassytha filiformis)는 대표적인 덩굴성 기생식물이다. 카리브 지역에선 이 식물을 최음제로 써 ‘사랑 덩굴’이라 부르기도 한다. 스콧 이건 미국 라이스대 진화생물학자 팀은 혹벌의 생명을 빨아먹는 이 덩굴식물의 치명적 기생전략을 과학저널 ‘커런트 바이올로지’ 최근호에 보고했다.

이 식물은 숙주의 줄기나 잎에 흡반을 붙인 뒤 수액과 영양분을 빨아먹으며 산다. 연구진은 미국 플로리다의 참나무 잎에 생긴 혹벌의 혹을 연구하다 우연히 기생식물이 혹을 감싼 모습을 발견했다. 자세히 조사해 보니, 흡반은 혹의 외벽을 뚫고 들어가 있었다.

혹벌의 혹에 기생하는 것으로 밝혀진 열대 기생식물 카시타 필리포르미스. 스콧 이건, 라이스대 제공.
혹벌의 혹에 기생하는 것으로 밝혀진 열대 기생식물 카시타 필리포르미스. 스콧 이건, 라이스대 제공.
혹벌의 혹은 식물에는 일종의 암과 같은 조직이다. 식물의 수분과 영양분을 흡수해 살아가는 식물조직의 일부이지만 식물에 해를 끼치는 존재다. 그런데 기생식물은 이 혹으로부터 수분과 영양분을 빼앗았다. 놀랍게도 기생식물의 공격을 받은 혹의 절반 가까이에서는 다 자란 혹파리가 말라 죽은 미라 상태로 발견됐다. 이건 교수는 “기생식물은 혹 속 혹벌 애벌레를 곧바로 죽이지 않아 성체로 발달하지만 결국은 미라 상태가 되는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또 기생식물의 공격을 받은 혹은 그렇지 않은 혹에 견줘 35% 크다는 사실도 발견했다. 이건 교수는 “식물이 더 큰 혹을 공격하거나 아니면 식물이 공격하는 혹이 더욱 커지도록 유도해 더 많은 에너지를 끌어내도록 했을 것”이라고 이 대학 보도자료에서 설명했다.

혹에 기생하는 기생식물. 기생 생물 사이의 새로운 먹이 관계가 앞으로 추가로 밝혀질 것으로 보인다. 매튜 코머퍼드 제공.
혹에 기생하는 기생식물. 기생 생물 사이의 새로운 먹이 관계가 앞으로 추가로 밝혀질 것으로 보인다. 매튜 코머퍼드 제공.
연구자들이 다음 연구과제로 삼는 건 어떻게 기생식물이 혹을 찾아내는가이다. 혹은 일반적으로 기생식물이 들러붙는 위치가 아닌 잎 뒷면에 달리기 때문에 기생식물에 혹을 찾아내는 특별한 무언가가 있을 것이란 생각이다. 이건 교수는 “기생식물에 혹을 찾아내는 탐색 시스템이 있거나 반대로 혹에 덩굴식물을 이끄는 무언가가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혹은 식물에 일종의 종양이기 때문에, 그 탐색 메커니즘이 규명되면 암을 찾아내 퇴치하는 데 기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은 먼 미래의 일이다.

연구자들은 이번 연구가 이제까지 몰랐던 새로운 먹이 관계를 밝혔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숙주를 공유하는 기생식물과 기생곤충의 상호관계가 처음 드러났다. 혹을 만드는 기생말벌이 세계에 1만3000종이 넘고 기생식물도 4000종이 넘기 때문에 이번에 드러난 것은 빙산의 일각일지 모른다”라고 이건 교수는 말했다.

■ 라이스대 연구팀 유튜브 영상(영어)

■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Scott P. Egan et al, Botanical parasitism of an insect by a parasitic plant, Current Biology 28, R847?R870, https://www.cell.com/current-biology/fulltext/S0960-9822(18)30815-7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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