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벌 독(봉침)처럼 거미 독도 유익할 수 있을까. 식중독균과 대장균을 죽이거나 혈압 상승을 막는 효과가 있는 거미의 독액을 처음 확인했다.
국립생물자원관과 동국대 성정석 교수팀 등 연구진은 거미 독 분석을 통해 신규 펩타이드 2종을 찾아냈다고 12일 밝혔다. 2종은 델타라이코톡신, 오메가아라네톡신이다. 델타라이코톡신은 세포막 파괴(세포 표면막이 기능을 상실해 세포 내용물이 밖으로 분산, 용해하는 현상)를 일으켜 식중독균과 대장균을 죽이는 효과가 있었다. 오메가아라네톡신은 신경세포 안으로 칼슘 이온의 유입을 차단해 혈압 상승을 막는 효과를 보았다.
연구진은 2016년부터 ‘자생생물 유래 독성물질의 유용성 탐색’ 연구 사업을 진행해왔다. 자생거미인 별늑대거미의 독액에서 델타라이코톡신을, 긴호랑거미의 독액에서 오메가아라네톡신을 찾아냈다. 연구 결과 델타라이코톡신은 서양종 꿀벌의 독인 멜리틴 펩타이드와 2μ㏖ 농도일 때 같은 항균 효과를 나타냈다. 오메가아라네톡신은 0.2μ㏖에서 고혈압 치료제로 쓰고 있는 실니디핀과 유사한 결과를 보였다. 연구진은 신규 펩타이드 2종에 대해 이달 말 특허를 출원하고 방부제나 의약품으로 활용할 방법을 모색한다. 다음 달에는 국제 학술지인 비비알씨(BBRC)에 연구 결과를 투고할 예정이다.
연구진은 또 자생 거미류가 사냥하는 방법에 따라 그 독의 기능적 특성과 쓰임새가 다른 것을 확인했다고 알렸다. 거미는 사냥 방법에 따라 다리 길이, 발톱 수, 눈의 발달 정도가 다르게 진화했는데, 독 또한 기능이 달라질 것으로 가정해 실험을 진행했다.
이 실험은 별늑대거미, 황닷거미, 무당거미 등 배회성 거미 3종과 긴호랑거미, 산왕거미, 무당거미 등 조망성 거미 3종 등 모두 6종을 대상으로 했다. 배회성 거미류는 그물을 치지 않고 땅, 숲, 계곡 등을 돌아다니며 먹이를 사냥한다. 조망성 거미는 한곳에 정착해 그물을 치고 생활하면서 먹이를 찾는 특성이 있다.
실험 결과 습성이 다른 거미의 독은 효과도 차이를 보였다. 배회성 거미류의 독액은 조망성 거미의 것보다 식중독균과 대장균에 대한 항균 능력이 5배와 19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배회성 거미는 먹이를 사냥하고 바로 먹는 습성이 있기 때문에 항균 능력이 높아진 것으로 해석했다. 조망성 거미의 독액은 배회성 거미의 것보다 먹이를 마비시킬 수 있는 신경억제활성 능력(신경세포의 기능을 억제 또는 마비시키는 작용)이 3배~10배 높게 나타났는데, 이는 그물에 걸린 먹이를 살려두었다가 나중에 먹이를 먹기 때문으로 파악했다.
최우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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