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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생태와진화

왜 범고래 모자는 ‘영아 살해’를 벌였나

등록 2018-03-27 15:06수정 2018-03-27 17:22

[애니멀피플]
가임기 끝난 할머니와 나이 든 아들
암컷에게 다가가 갓난새끼 납치
익사한 새끼 4시간 가까이 물고 다녀
어미 범고래(T046B)와 갓 태어난 새끼 범고래(T046B5)가 헤엄치고 있다. 이들은 범고래 모자의 공격을 받았다.  자레드 타워즈 제공
어미 범고래(T046B)와 갓 태어난 새끼 범고래(T046B5)가 헤엄치고 있다. 이들은 범고래 모자의 공격을 받았다. 자레드 타워즈 제공
사자의 ‘영아 살해'는 유명하다. 사자는 알파 수컷을 중심으로 다수의 암컷과 새끼들이 모여 ‘프라이드'(사자의 무리)를 이룬다. 그런데 한 수컷이 다른 프라이드의 알파 수컷을 공격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때 상대편 수컷이 거느린 암컷의 새끼들을 다 살해한다. 과학자들은 수컷이 잠재적 파트너의 가임 시기를 앞당겨 자신의 유전자를 퍼뜨리기 위한 번식 전략으로 해석한다.

범고래 무리에서도 ‘영아살해'로 보이는 행동이 처음 관찰됐다. 자레드 타워즈 캐나다 어업해양청 박사 등 연구팀은 20일 과학전문지 ‘사이언티픽 리포트' 온라인판에 2016년 12월 목격한 범고래 영아살해 사건을 사진, 영상과 함께 보고했다. 영아살해는 사자와 설치류, 일부 영장류에서 관찰되지만, 범고래에서 관찰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돌고래에서는 큰돌고래, 혹등돌고래와 가이아나돌고래 등 세 종에서 목격됐다)

자레드 타워즈 박사 연구팀이 영아 살해를 목격한 건 2016년 12월 캐나다 밴쿠버섬의 북동쪽 해안. 밴쿠버섬과 미국 시애틀 연안에 이르는 세일리시해의 일부로, 과학자들이 오랜 기간 범고래 행동을 연구해 온 지역이다. 이미 범고래 무리에 대한 개체 식별 작업이 완료돼, 과학자들은 등지느러미만 보고도 개체와 친족 관계, 소속 무리를 안다.

연구팀은 이날 존스톤 해협에서 범고래 모자가 시속 11~15㎞로 한 무리를 쫓고 있는 걸 발견했다. 범고래 모자는 이미 가임기를 지난 할머니 범고래 T068A(46살 이상)와 그의 나이 든 아들 T068A(32살)이었다. 반면 쫓기고 있는 범고래 무리는 젊은이들이었다. 28살 된 젊은 어미(T046B)와 그의 자식·손주 6마리였다. 젊은 어미 T046B 옆에는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새끼(T046B5)도 함께 헤엄치고 있었다.

할머니 범고래 T068이 어미 T046B의 갓난새끼 T046B5를 물고 헤엄치고 있다.  자레드 타워즈 제공
할머니 범고래 T068이 어미 T046B의 갓난새끼 T046B5를 물고 헤엄치고 있다. 자레드 타워즈 제공
그저 흔한 싸움으로 생각하고 연구팀이 현장을 떠나려 할 때, 찰싹 때리는 소리가 들렸다. 자레드 타워즈는 23일 영국 매체 ‘가디언'과 인터뷰에서 “다시 현장에 가보니 수면 위에서 보였던 갓난 새끼의 모습이 온데간데 없었다”고 말했다. 그때 추적자 무리의 나이 든 아들(T068A)이 갓난 새끼(T046B5)의 꼬리를 물고 연구팀이 탄 보트를 지나치는 게 눈에 띄었다. 자레드는 “이미 공격이 시작된 뒤였다. 놀랍고 무서웠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그제야 범고래 모자가 협업해 새끼를 공격하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공격 받은 무리의 젊은 어미 T046B의 반격도 만만치 않았다. 그가 아들을 쫓자, 할머니는 훼방 놓으면서 재반격했다. 젊은 어미가 일격을 가하긴 했다. T046B가 T068A를 내리치자 피가 공중에 솟구치기도 했다.

그러나 범고래 모자는 갓난 새끼를 그냥 놔두지 않았다. 이미 질식해 숨진 상태의 새끼를 두 모자는 최소 2시간40분 동안 주거니 받거니 물고 다녔다. 그러나 연구팀은 범고래 모자가 새끼를 물어뜯거나 잡아먹은 정황은 관찰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미국과 캐나다 국경 태평양 연안의 세일리시해는 범고래의 주요 서식지다. 각 무리와 개체가 식별될 정도로 관련 연구가 많이 진척됐다. 2014년 세일리시해에서 한 범고래가 스파이호핑(고개를 들고 수면 위를 둘러보는 행동)을 하고 있다.  남종영 기자
미국과 캐나다 국경 태평양 연안의 세일리시해는 범고래의 주요 서식지다. 각 무리와 개체가 식별될 정도로 관련 연구가 많이 진척됐다. 2014년 세일리시해에서 한 범고래가 스파이호핑(고개를 들고 수면 위를 둘러보는 행동)을 하고 있다. 남종영 기자
연구팀은 범고래의 이런 행동을 다른 동물에서 보이는 번식 전략과 비슷하다고 보았다. 연구팀은 논문에서 “T068과 T068A의 협동 사냥은 잠재적인 포괄 적응도(inclusive fitness)를 높이는 행동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포괄 적응도는 자신이나 자신과 유전적으로 가까운 개체의 유전자가 다음 세대로 전달될 가능성을 높이는 쪽으로 행동한다는 이론이다. 이번 경우엔 할머니와 그의 나이 든 아들이 아들의 잠재적 파트너의 새끼를 죽임으로써 번식 기회를 늘릴 수 있다.

그렇다면, 왜 할머니 범고래는 아들의 공격에 가담했을까?

여기서 우리는 범고래 사회의 특징을 살펴봐야 한다. 일반적인 동물과 달리 범고래는 가임기가 끝난 ‘할머니'도 무리에 머물며 10년 넘게 자신의 역할을 맡는다. 모계사회인 범고래 집단에서 할머니는 ‘길찾기'와 ‘사냥기술' 등 지식과 기술을 후대에 전수하고, 어미가 사냥을 나갈 때 어린 손주들을 보살핀다. 타워즈는 “할머니로서도 자신의 유전자 25%를 후대에 전달할 수 있다고 보면, 진화적으로 이런 행동이 이해가 된다. 아들의 번식 기회를 높이는 것이 할머니로서도 좋은 것”이라고 말했다.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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