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이 출현했다는 경고음을 녹음해 들려주자 박새가 놀라 둥지에서 뛰쳐나와 주위를 살피고 있다. 교토대 스즈키 도시다카 제공.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도 놀란다’는 속담은 우리가 위험을 지각하고 대응하는 방식을 보여준다. 자라를 보고 놀랐다면 머릿속에 그 이미지가 자리 잡아 모든 것이 자라로 보인다. 뱀이 나온다는 주의를 받은 산길에서 구불구불한 나뭇가지를 볼 때마다 깜짝 놀라는 것도 비슷한 이치다. 그렇다면 연상을 통해 위험에 대처하는 이런 능력은 사람만의 능력일까.
스즈키 도시다카 일본 교토대 동물행동학자는 최근 실험을 통해 박새도 비슷한 능력을 보인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사람 아닌 동물에서 어떤 소리를 듣고 시각적인 연상을 하는 사실이 밝혀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박새는 포식자 가운데 특히 뱀에 예민하다. 뱀은 박새가 둥지를 틀어 새끼를 기르는 구멍 속에 들어와 어미와 새끼를 모두 해칠 수 있다. 뱀이 나타났다는 다른 박새의 경고음을 들은 박새는 즉시 둥지에서 나와 달아난다. 둥지 밖에서 들었다면 땅바닥을 내려다보며 뱀이 어디 있는지 수색한다.
둥지 밖에서 뱀 경고음을 들은 박새는 뱀의 위치를 수색한다. 교토대 스즈키 도시다카 제공.
스즈키는 2013년 박새가 뱀에 대해서는 까마귀나 담비 같은 포식자와 다른 경계음을 낸다는 사실을 밝히기도 했다. 그는 이번 연구에서 녹음한 뱀 경고음을 틀어준 뒤 죽은 나뭇가지를 가는 실로 묶어 나뭇가지 위로 끌어올리는 실험을 했다. 박새는 일반적인 경고음이나 친구를 부르는 소리를 틀었을 때는 이런 나뭇가지 움직임에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또 나뭇가지를 나무에 걸어 흔들리도록 하는 등 뱀 같지 않을 때도 반응하지 않았다.
그러나 뱀 경고음 뒤 뱀처럼 꿈틀거리며 나무를 기어오르는 나뭇가지에는 민감하게 반응했다. 실제로 뱀을 보지 않더라도 특별한 경고음으로 뱀의 이미지를 갈무리한다면 뱀과 비슷한 물체를 더욱 예민해질 수 있음을 보인 것이다. 스즈키는 “마음속에 뱀의 이미지를 지니고 있다면 뱀이 어디에 있더라도 박새가 잘 찾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이 대학 보도자료에서 말했다.
뱀 경고음을 들은 박새는 뱀의 이미지가 머릿속에 떠오르며 뱀과 비슷한 물체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교토대 스즈키 도시다카 제공.
뱀을 발견한 박새는 뱀에 가까이 접근해 꼬리와 날개를 펴고 공중에서 정지비행을 하면서 뱀의 공격을 저지한다. 그러나 이번 실험에서 이런 저지 행동은 하지 않았다. “가까이 갔을 때는 뱀이 아니라 나뭇가지임이 분명했기 때문”이라고 스즈키는 설명했다.
최근 현장 생물학자들은 원숭이와 미어캣 등 많은 동물이 특정한 형태의 먹이나 포식자에 대해 특정한 신호음을 낸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번 연구는 그런 행동이 시각적 연상작용과 결부될 가능성을 보여준다. 스즈키는 “다른 동물의 소통 체계에서도 (박새처럼) 이미지를 갈무리하는지 모른다”며 “야생동물의 인지 메커니즘을 밝히는 것은 사람 언어의 기원과 진화를 탐구하는데 통찰을 제공한다”라고 말했다.
이 연구는 미 국립학술원회보(PNAS) 30일 치에 실렸다.
■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Toshitaka N. Suzuki. Alarm calls evoke a visual search image of a predator in birds.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2018; 201718884 DOI: pnas.1718884115" rel="nofollow" target="_blank">10.1073/pnas.1718884115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