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고 강력한 모란앵무의 부리는 두 다리 못지않은 힘을 내는 제3의 다리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뉴욕공대 제공.
모든 척추동물의 사지는 짝수이다. 사람은 물론이고 새, 물고기, 개구리 할 것 없이 다리가 3개나 5개인 동물은 없다. 그러나 모란앵무가 강력한 부리를 다리처럼 사용해 사실상 다리 3개로 걷는 것으로 밝혀졌다.
마이클 그라나토스키 미국 뉴욕공대 교수 등 이 대학 연구진은 과학저널 ‘왕립학회보 비’ 최근호에 실린 논문에서 “앵무는 벽을 타고 오를 때 3족 보행을 하며 이때 부리는 두 다리와 견줄 만한 추진력을 낸다”고 밝혔다.
연구자들은 애완용으로 널리 기르는 벚꽃모란앵무를 대상으로 여러 각도의 경사면을 오르도록 했다. 경사판에는 센서를 설치해 부리, 다리, 꼬리가 미치는 힘의 세기를 측정하고 새의 행동을 고속촬영했다.
앵무는 경사판의 각도가 45도 이상이 되자 부리로 바닥을 물면서 걷기 시작했다. 오른발, 왼발, 부리…차례를 되풀이하며 바닥을 짚고 이동했다.
모란앵무는 경사의 각도가 45도 이상이 되면 부리를 보행에 동원했다. 주황색은 부리, 초록은 꼬리의 사용 빈도를 가리킨다. 멜로디 영 외 (2022) ‘왕립학회보 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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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저자인 박사과정생 멜로디 영은 “수직으로 이동하는 새들은 많지만 지금까지 머리를 세 번째 다리로 사용하는 새는 앵무가 유일하다”며 “이런 행동은 오랜 세월에 걸쳐 신경 근육이 변화해 가능했을 것”이라고 이 대학
보도자료에서 말했다. 구체적으로 “목굽힘근이 추가적인 힘을 내고 신경계통이 바뀌어 부리의 움직임을 다리가 걷는 리듬에 맞추도록 하는 변화가 일어났다”고 덧붙였다.
벚꽃모란앵무는 부리가 크고 강력하며 자기 체중의 14배를 지탱하는 힘을 내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연구에서 부리는 다리에 못지않은 힘을 냈으며 체중을 고려한다면 수직 벽을 오르는 사람이나 영장류의 팔심보다 같거나 더 큰 힘을 내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험결과는 앵무의 부리가 단지 균형을 잡기 위한 보조적 용도가 아니라 정식 보행기관임을 보여준다.
벚꽃모란앵무는 나미브 사막 등 남서 아프리카 건조지대에 서식하는 소형 앵무이다. 게티이미지뱅크
동물 보행 진화 전문가인 그라나토스키 교수는 “머리를 추진용 다리로 쓰는 것은 새로운 형태의 진화”라며 “동물들은 뜻밖의 해부구조를 재활용해 완전히 새로운 행동에 쓰곤 한다”고 말했다.
앵무와 비슷하게 기존 기관을 재활용한 사례로 연구자들은 캥거루와 거미원숭이 꼬리를 들었다. 캥거루는 느린 속도로 뛸 때 두툼한 꼬리로 바닥을 밀치며 거미원숭이도 이동할 때 꼬리로 나무줄기를 붙잡아 꼬리는 이들에게 사실상 다섯 번째 다리이다.
캥거루와 거미원숭이의 크고 강력한 꼬리는 ‘제5의 다리’ 노릇을 한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새 가운데는 딱따구리와 동고비가 나무줄기를 수직으로 이동하는데 앵무와 달리 이들은 두 다리로 뛴다. 연구자들은 “(딱따구리와 달리 두 다리로 걷는) 앵무는 날개로 쥘 수 없기 때문에 부리를 추가적인 다리로 활용하는 진화를 이루었다”고 적었다. 그러나 딱따구리가 강력한 꼬리 깃털로 몸을 지탱하는데 견줘 앵무의 꼬리 깃털은 추진력이 아닌 단순한 지원 기능만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라나토스키 교수는 “앵무는 나무 위에서 생활하던 고대 계통의 동물이어서 행동과 해부구조가 현생 영장류와 견줄 만한 것들이 많다”며 “앵무의 독특한 추진방법을 새로운 로봇 시스템을 개발하는 데 응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인용 논문:
Proceedings of the Royal Society B, DOI: 10.1098/rspb.2022.0245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