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열대림에 사는 거대 전갈 자이언트 블루는 몸 길이가 10∼12㎝에 이르지만 애완동물로 기른다. 찔리면 아프고 물린 부위가 약간 마비되지만 치명적이진 않다. 게티이미지뱅크
2008년 상영된 영화 ‘인디아나 존스: 크리스탈 해골의 왕국’에서 전갈은 관객의 비명을 끌어내는 노릇을 톡톡히 한다. 이때 주인공은 “전갈은 클수록 좋아”라는 말을 남긴다. 아일랜드 국립대 연구자들은 이 말이 그냥 지나가는 말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했다.
연구자들이 다양한 계통의 전갈 36종을 골라 몸과 집게의 크기와 형태, 독성의 정도 등을 조사해 비교했다. 그랬더니 큰 전갈일수록 독성이 약했고 집게도 크고 두터운 것보다 얇고 길수록 맹독을 띠었다. 이 연구는 과학저널 ‘독물’ 최근호에 실렸다. 교신저자인 케빈 힐리 박사는 “오락영화에서 나온 금언이지만 거기엔 훌륭한 진화적 이유가 담겨 있으며 중요한 의학적 의미도 있다”고
이 대학 보도자료에서 말했다.
세계에서 가장 치명적인 독성을 지닌 전갈의 하나인 데스스토커. 남아프리카와 중동에 서식하며 몸길이가 5∼6㎝에 지나지 않지만 독침으로 강력한 신경독을 분비한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전갈에 쏘이는 사람은 중남미 등 세계에서 해마다 120만 명에 이르며 그 가운데 3000명 이상이 숨진다. 전갈에 쏘이면 통증, 마비, 근육 경련, 침 흘리기, 부정맥 등의 증상을 보이며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의사는 환자가 얼마나 맹독성 전갈에 쏘였는지 알아야 제대로 처치를 할 터이지만 대개 환자는 어떤 종의 전갈이 공격했는지 알지 못한다. 연구에 참여한 마이클 듀곤 박사는 “전갈에 쏘여 심각한 증상을 보이는 입원환자 대부분은 15살 이하의 어린이다. 어떤 종류의 전갈이 쏘았는지 아는 게 꼭 필요하지만 이때 ‘큰 전갈이 좋은 것’이란 간단한 규칙은 목숨을 구하는 첫걸음이 된다”고 말했다.
브라질 상파울루의 인구 밀집지에서 바퀴 등을 잡아먹으며 급증해 큰 사회문제가 된 노랑전갈. 두꺼비가 천적으로 드러났다. 자헤지 외 (2020) ‘톡시콘’ 제공.
연구 결과 길이 5∼7㎝로 조사 대상 가운데 가장 작은 브라질의 노랑전갈은 손바닥만 한 아프리카의 하도제네스 전갈보다 독성이 100배나 강했다. 남미에서 가장 위험한 전갈인 노랑전갈은 브라질 상파울루 시에서 2018년 14만명이 쏘여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기도 했다(▶
브라질 도심 출몰 ‘전갈 공포’, 두꺼비로 잠재울까).
또 집게의 크기도 독성과 관련이 있었는데 조사 대상 중 집게가 가장 작은 남아프리카 굵은꼬리전갈은 거대한 집게를 휘두르는 이스라엘 골드전갈보다 10배나 더 치명적이었다. 골드전갈로 인한 사망 기록은 없다.
연구자들은 전갈이 먹이를 사냥하고 천적으로부터 방어하는데 집게와 독침을 모두 쓰는데 이들 무기 사이에 진화적 주고받기 관계가 벌어졌다고 밝혔다. 큰 전갈은 거대한 집게를 만들어 유지하는 데 많은 에너지를 쓰기 때문에 강력한 화학무기를 준비할 여유가 없다. 반대로 작은 몸집의 전갈은 강력한 독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힐리 박사는 “데스스토커처럼 가장 위험한 전갈은 비교적 작다. 반대로 하도제네스 전갈처럼 가장 큰 전갈의 독은 그저 살짝 아프게 할 뿐”이라고 말했다.
아프리카의 거대 전갈인 하도제네스 전갈. 사냥과 방어에는 독침보다 큰 집게를 이용한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전갈과 마찬가지로 거미도 작을수록 독이 강하다. 거대한 타란툴라가 크고 날카로운 이빨에 견줘 독샘은 미미했지만 치명적인 과부거미는 몸은 작아도 독샘은 잘 발달해 있다. 그러나 독뱀과 독이 없는 뱀으로 계통이 오래전 갈린 뱀에서는 이런 현상이 나타나지 않는다.
인용 논문:
Toxins, DOI: 10.3390/toxins14030219
조홍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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