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멀피플] 전투기 조종사 탈출하듯 초속 88m로 튕겨 나가 탈출 행동 여러 번 되풀이, 암컷이 좋은 자질로 평가
짝짓기하는 왕관응달거미. 수컷(위)은 정자를 전달하자마자 공중으로 몸을 날려 포식을 피한다. 장 시창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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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컷 거미의 짝짓기는 목숨을 건 아슬아슬한 일이다. 수정을 마치고 재빨리 달아나지 못하면 거대한 암컷은 수컷을 후세를 기르기 위한 먹잇감으로 삼기 때문이다.
사마귀나 거미에서 종종 나타나는 이런 성적 동종포식을 피하기 위해 선물 주기, 거미줄로 묶기, 심지어 자신의 다리를 하나 떼어주고 짝짓기하기 등 다양한 전략이 진화했다(▶‘다리 줄게 화내지 마’ 무당거미 수컷의 짝짓기 전략).
장시창 중국 허베이 대 동물학자 등 중국 연구자들은 왕관응달거미의 짝짓기 행동을 관찰하던 중 수컷의 기발한 탈출법을 발견했다. 추락하는 전투기에서 조종사가 탈출하듯 수컷 거미가 빠른 속도로 회전하며 암컷으로부터 튕겨 나갔다.
초고속 촬영한 왕관응달거미 수컷의 탈출 모습. 장 시창 외 (2022) ‘커런트 바이올로지’ 제공
왕관응달거미는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에 분포하는 거미로 거미 아파트처럼 여럿이 모여 저마다 거미줄을 치는 습성이 있다. 장씨는 “관찰하니 짝짓기는 늘 수컷이 몸을 내던지는 동작으로 끝났다”며 “이 동작이 너무 빨라 일반 카메라로는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 수 없었다”고 말했다.
초고속 영상으로 새로운 탈출법의 세부 행동이 드러났다. 수컷은 자신의 배에서 가져온 정자를 정자 주머니에 넣고 앞다리를 이용해 암컷의 생식공에 삽입한다. 자신보다 훨씬 큰 암컷을 마주 보며 하는 위험천만한 작업이다.
정자를 옮겨놓은 직후 수컷은 움츠렸던 앞다리를 펴면서 암컷의 가슴을 강하게 밀쳐내며 공중으로 몸을 날렸다. 비상 탈출인 셈이다.
연구자들은 약 300마리의 거미가 모여있던 거미줄 마을을 조사했는데 성공한 짝짓기 155건 가운데 152건에서 수컷이 몸을 날렸다. 공중으로 튕겨 나가지 못한 수컷 3마리는 암컷의 밥이 됐다. 연구자들이 짝짓기 뒤 몸을 날리지 못하도록 붓으로 막은 수컷 30마리도 같은 운명을 맞았다.
연구자들은 수컷 거미가 몸을 날리는 비결을 “외부 근육이 따로 없기 때문에 접었던 앞다리의 첫째 관절을 내부 수압을 이용해 급속하게 팽창시킨다”고 밝혔다. 앞발을 쓰지 못하면 몸을 날리지 못하는 것을 실험으로 확인했다.
거미가 몸을 날리는 속도는 평균 초속 65m였고 최고 속도는 88m에 이르렀다. 몸을 날릴 때 초속 175회의 속도로 빠르게 회전하기도 했다.
왕관응달거미 암컷(왼쪽)과 수컷. 아키오 타니가와,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흥미로운 건 수컷은 몸을 날릴 때 꽁무니에서 안전줄을 내 이를 되짚어 다시 암컷으로 돌아가는 행동을 되풀이했다는 사실이다. 연구자들은 “튕겨 나갔다가 6번까지 같은 암컷에게 돌아오는 수컷도 보았다”고 논문에 적었다.
장씨는 “암컷은 이런 행동을 수컷의 자질을 평가하는 데 이용하는 것 같다”며 “만일 수컷이 튕겨 나가기를 하지 못하면 죽이고 만일 이런 일을 여러 번 할 수 있다면 그의 정자를 받아들인다”고 말했다.
연구자들은 “수컷의 이런 회피 행동은 암컷이 성적 동종포식을 많이 하면서도 짝짓기 기회가 사라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진화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인용 논문: Current Biology, DOI: 10.1016/j.cub.2022.03.051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