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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못하는 아기는 고통도 모를까?…문어와 게도 마찬가지

등록 2022-03-28 15:38수정 2022-03-28 21:43

[애니멀피플]
1980년대까지 신생아 무마취 수술, 두뇌 미발달해 고통 못 느낀다 믿어
포유류 이어 어류, 무척추동물까지 감정·지각 드러나, “도덕 기준 바뀌어야”
바닷가재와 게 등 십각류는 문어, 낙지 등 두족류와 함께 고통을 느끼는 지각 있는 동물로 드러나고 있다. 영국에서는 동물복지 차원에서 고통 없이 죽이는 법 등을 법률로 규정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게티이미지뱅크
바닷가재와 게 등 십각류는 문어, 낙지 등 두족류와 함께 고통을 느끼는 지각 있는 동물로 드러나고 있다. 영국에서는 동물복지 차원에서 고통 없이 죽이는 법 등을 법률로 규정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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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미숙아로 태어난 제프리 로슨은 1985년 심장절개수술을 받았다. 가슴을 열기 전 마취 의사는 아기에게 근육이완제를 주사했다. 고통은 고스란히 느끼지만 소리는 지르지 못하게 하는 약이었다. 소송사태로 이어진 이 수술에 대해 의사는 “신생아는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는 교과서 내용대로 시술했다”고 주장했지만 어머니는 “아무리 노련한 의사의 말이라도 아기가 통증을 느끼지 못한다는 말을 어떻게 믿겠나”고 항변했다.

서양의학에선 19세기 말부터 1980년대까지 신생아의 수술은 로슨처럼 최소한의 마취 또는 전혀 마취하지 않고 이뤄졌다. 아기는 두뇌가 미성숙해 통각이 발달하지 않았다고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아기도 고통을 느낀다는 압도적 증거 앞에 이런 편견은 사라졌다.

말 못하는 아기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다는 생각이 잘못된 것처럼 비인간 동물들도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고 믿는 것은 잘못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프란스 드 발 미국 에모리대 교수와 크리스틴 앤드루스 캐나다 요크대 교수는 과학저널 ‘사이언스’ 최근호에 기고한 글에서 “무척추동물을 포함한 동물들도 감정을 느낀다”며 “우리의 도덕 기준이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드 발 교수 등은 “아기가 말을 하지 못한다고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폐기된 것처럼 비인간 동물에 대한 생각도 마찬가지로 바뀌어야 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비인간 동물에게 감정이 있다는 걸 부정할 수 없는 것은 인간과 다른 동물 신경계가 기본적으로 비슷하고 환경과 동료에 대한 감정적인 반응이 비슷하게 진화해 왔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게도 고통을 기억하고 회피하는 법을 학습하는 능력을 지녔음이 밝혀지고 있다. 픽사베이 제공.
게도 고통을 기억하고 회피하는 법을 학습하는 능력을 지녔음이 밝혀지고 있다. 픽사베이 제공.

동물도 고통을 느낀다는 인식은 사람과 비슷한 포유류에서 출발해 점차 물고기 등 사람과 거리가 먼 동물로 확대됐다. 최근에는 동물복지의 대상을 무척추동물인 문어나 게까지 넓히려는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영국 정부는 “오징어와 낙지 같은 두족류와 게, 가재 같은 십각류가 지각이 있는 존재로 분류돼야 한다”는 런던경제학교의 연구용역을 바탕으로 동물복지법 대상 동물에 이들을 포함하려는 법률개정안을 추진 중이다(▶오징어·낙지도 ‘고통’ 느낀다…런던대 “산 채 삶는 건 잔인”).

드 발 교수 등은 “10여년 전 ‘물고기도 고통을 느끼나’를 둘러싼 논란이 처음 벌어졌을 때 물고기의 반응은 난로에서 반사적으로 손을 떼는 것과 같은 무의식적 통각 반응으로 간주됐다”라며 “그러나 이후 연구로 물고기가 부정적 자극을 주는 장소를 회피하고 학습하는 것으로 나타나 중추신경을 통한 지각 능력이 있음이 밝혀지면서 논란이 끝났다”고 논문에 적었다.

무척추동물이지만 문어는 사람의 얼굴을 구별하고 놀이를 즐기는 등 뛰어난 인지능력을 지녔음이 밝혀졌다. 픽사베이 제공.
무척추동물이지만 문어는 사람의 얼굴을 구별하고 놀이를 즐기는 등 뛰어난 인지능력을 지녔음이 밝혀졌다. 픽사베이 제공.

비슷한 논리가 문어와 게 같은 무척추동물에게도 적용됐다. 문어는 사람의 얼굴을 구별하고 놀이를 즐긴다. 게도 전기충격을 회피하는 법을 배우고 좋은 은신처와 전기충격 사이에서 복잡한 타협을 하는 사실도 드러났다(▶식탁 위의 ‘해물탕들’ “우리도 똑같이 아파요”). 드 발 교수 등은 “게 연구결과는 절지동물도 감정을 느끼며 따라서 지각력이 있음을 보여준다”고 밝혔다.

고통을 느끼느냐의 문제를 넘어 사람과 비인간 동물이 근본적으로 다른 존재라는 생각도 흔들린다. 드 발 교수 등은 “동물 종은 다 다르지만 신경생리, 인지, 감정, 지각능력 등은 기본적으로 유사하다는 사실이 최근 과학적으로 입증됐다”고 주장했다.

예를 들어 얼굴의 표정을 짓는 근육 움직임은 사람과 침팬지 사이에 거의 차이가 없고 공포에 닥쳤을 때 신체 말단부위의 체온이 떨어지고 뇌 편도체가 활성화하는 것은 사람이나 쥐나 마찬가지이다.

비인간 동물은 고통을 넘어 공감 능력 등 다른 감정적 능력을 지녔음이 드러났다. 암소는 송아지의 고통을 제 것처럼 느낀다. 픽사베이 제공.
비인간 동물은 고통을 넘어 공감 능력 등 다른 감정적 능력을 지녔음이 드러났다. 암소는 송아지의 고통을 제 것처럼 느낀다. 픽사베이 제공.

또 스트레스와 유대에 관련된 호르몬은 사람부터 무척추동물까지 비슷하다. 포유류나 조류는 여건이 나쁠수록 비관적으로 바뀌는데 꿀벌도 포식자가 공격해 온 것처럼 벌통을 흔들었을 때 새로운 맛을 탐색하려는 태도가 줄어들었고 사람의 우울과 불안에 해당하는 생리변화가 나타났다.

동물은 동료의 감정 상태에 민감하게 반응해 공감하고 위로하려 든다. 암소는 송아지가 아파하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 고통을 겪는다. 드 발 교수 등은 “최근의 연구로 넓은 범위의 동물들이 고통을 회피하려고 한다는 사실이 드러났다며 이들 동물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것이 사람의 도덕적 책무”라고 밝혔다.

인용 논문: Science, DOI: 10.1126/science.abo2378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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