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멀피플] 제왕나비, 유전체 돌연변이로 ‘독성’ 협죽도과 식물 먹고 견뎌 포식자·기생생물 새·쥐·말벌·선충도 같은 돌연변이 보유
멕시코 월동지에서 나뭇가지에 매달려 쉬는 제왕나비(왼쪽)와 이들을 포식하는 검은머리밀화부리. 이 새는 독성이 심해 다른 새는 먹지 못하는 제왕나비를 곳에 따라 무리의 60%까지 먹어치우는 주요 천적이다. 마크 채펠, 캘리포니아대 리버사이드 제공.
겨울을 나기 위해 캐나다에서 미국을 거쳐 멕시코에 도착한 제왕나비는 수천에서 100만 마리가 나뭇잎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린다. 포식자에겐 만찬의 시간일 테지만 제왕나비는 도망가기는커녕 선명한 노란 바탕에 검은 줄무늬가 도드라지는 경계색으로 오히려 자신을 드러낸다.
굶주린 어치가 날개를 펴면 10㎝에 이르는 통통한 제왕나비 한 마리를 덥석 삼켜 보지만 곧 토해낸다. 제왕나비는 머리와 배 그리고 날개 끝까지 ‘강심 배당체(카디악 글리코사이드)’라는 독성물질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제왕나비를 먹고 곧 토해내는 어치. 링컨 브라우어 제공.
제왕나비 애벌레가 먹는 협죽도과의 식물에서 온 이 독성물질은 많이 먹으면 사람이나 말도 죽을 만큼 강력하다. 그런데도 제왕나비를 잡아먹는 새와 쥐가 있다는 사실이 1970년대부터 알려졌다.
미국 캘리포니아대 생물학자들은 일부 천적이 제왕나비를 포식할 수 있는 것은 식물의 독성을 회피할 수 있는 돌연변이 덕분이며 새뿐 아니라 쥐와 말벌, 선충 등도 비슷한 적응에 성공했음을 밝혔다. 연구자들은 23일 과학저널 ‘커런트 바이올로지’에 실린 논문에서 “적어도 4종의 제왕나비 천적이 강심 배당체를 무력화시키는 진화를 이룩했다”고 밝혔다.
제왕나비 암컷. 협죽도과 식물의 독성물질을 몸에 축적해 일부러 포식자의 눈에 띄도록 경계색을 낸다. 케네스 해럴슨,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협죽도과 식물의 독성은 동물의 나트륨-칼륨 펌프(소듐-포타슘 펌프)의 이상을 초래한다. 세포막에 있는 단백질인 이 펌프는 나트륨의 균형을 유지하며 근육과 신경 작동에 꼭 필요하다. 사람은 음식으로 섭취한 에너지의 3분의 1을 이 펌프 작동에 쓸 정도로 중요하다.
연구자들은 2년 전 제왕나비 애벌레가 이런 독성물질을 먹고도 끄떡없는 이유가 나트륨-칼륨 펌프 유전자 1∼2벌에 돌연변이가 일어났기 때문임을 밝혔다. 독성식물을 먹어도 펌프 작동에는 이상이 없지만 몸속에 독성이 축적돼 포식자에게는 치명타를 가한다.
월동 중인 제왕나비를 잡아먹는 검은머리밀화부리(앞쪽). 독성이 강한 날개는 떼고 몸통만 먹는다. 뒤쪽의 새는 멕시코 고유종인 검은등찌르레기사촌인데 역시 제왕나비를 먹는다. 아직 유전체 분석은 이뤄지지 않았다. 린다 핑크 제공.
연구자들은 멕시코 월동지에서 곳에 따라 제왕나비의 60%까지 먹어치우는 검은머리밀화부리에 주목했다. 최근 이 새의 유전체(게놈)가 해독됐는데 확인해 보니 제왕나비와 마찬가지로 식물 독성을 막아주는 돌연변이가 일어났다.
연구자들은 밀화부리 말고도 월동지 나무에서 떨어지는 제왕나비를 먹는 사슴쥐와 제왕나비의 알에 기생하는 소형 말벌, 제왕나비 애벌레에 기생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선충에서도 유사한 돌연변이를 확인했다.
연구에 참여한 노아 화이트먼 캘리포니아대 버클리캠퍼스 교수는 “독성물질이 식물로부터 식물을 먹는 곤충으로, 다시 이를 먹는 포식자와 기생자로까지 이동했다”며 “이에 대응하기 위해 포식자와 기생자가 유전자의 같은 위치에 (돌연변이를 통해) 독성 저항을 진화시킨 사실이 밝혀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이 대학 보도자료에서 말했다.
협죽도과 식물의 독성이 제왕나비 애벌레와 성체를 거쳐 포식자인 검은머리밀화부리로 이동하는 과정. 이들은 모두 나트륨-칼륨펌프의 돌연변이로 독성을 회피한다.
주 저자인 사이먼 그로언 이 대학 리버사이드 캠퍼스 교수는 “이 모든 동물의 분자 수준에서 수렴진화가 일어난 놀라운 사례”라고 말했다. 수렴진화란 진화계통이 다른 동물들이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비슷한 형태의 진화를 이룬 것을 말한다. 박쥐와 새의 날개가 그런 예이다.
연구자들은 제왕나비의 엄청난 개체수에 비춰 이번에 발견한 4종 말고도 독성에 적응한 다른 포식자가 있을 것으로 추정했다.
제왕나비는 1990년대 초 5억 마리에 이르렀지만 현재 1억 마리로 급격히 줄었다. 그로언 교수는 “제왕나비가 해마다 월동하고 짝짓기하는 멕시코의 숲이 기후변화로 위태롭다”며 “나비의 무리가 작아지면서 점점 새와 쥐의 손쉬운 먹이가 되는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인용 논문: Current Biology, DOI: 10.1016/j.cub.2021.10.025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