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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생태와진화

바다 밑 ‘유령’이 집게를 가두어 죽이고 있다

등록 2021-11-05 13:40수정 2021-11-05 14:02

[애니멀피플]
해마다 폐타이어 하나가 수백 마리 ‘유령 어업’
미끄러운 표면에 갇힌 집게 서로 잡아먹기도
연구자들이 무쓰 만 해저에서 발견한 폐타이어(왼쪽). 안에는 타이어 안에 갇혔던 집게가 집으로 썼던 패각이 잔뜩 흩어져 있다. 소가베 아츠시 외 (2021) ‘왕립학회 공개과학’ 제공.
연구자들이 무쓰 만 해저에서 발견한 폐타이어(왼쪽). 안에는 타이어 안에 갇혔던 집게가 집으로 썼던 패각이 잔뜩 흩어져 있다. 소가베 아츠시 외 (2021) ‘왕립학회 공개과학’ 제공.

바다에 버려진 폐타이어 하나당 해마다 수백 마리의 집게가 숨어들었다가 오목한 곡면에 미끄러져 빠져나오지 못해 굶어 죽는 것으로 밝혀졌다. 새나 물고기의 기초 식량이자 주요 청소부인 집게가 대규모로 죽는다면 해양생태계에 심각한 악영향이 우려된다.

소가베 아츠시 일본 히로사키대 교수 등은 과학저널 ‘왕립학회 공개과학’ 최근호에 실린 논문에서 막대한 양이 바다에 버려지는 폐타이어가 장기간에 걸쳐 집게를 죽이는 새로운 ‘유령 어업’의 어구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연구 동기에 대해 소가베 교수는 “2012년 6월 아오모리 현 무쓰 만의 수심 8m 해저에 버려진 타이어 안에 수많은 패각이 널려 있었고 일부는 집게가 들어있는 것을 보았다”며 “집게가 타이어를 빠져나오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품게 됐다”고 밝혔다.

패각을 집으로 이용하는 긴눈집게의 일종. 해안의 먹이동물이자 청소동물로 생태계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한스 힐러베르트,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패각을 집으로 이용하는 긴눈집게의 일종. 해안의 먹이동물이자 청소동물로 생태계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한스 힐러베르트,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연구자들은 이를 확인하기 위해 무쓰 만의 비슷한 수심 해저에 타이어 6개를 설치하고 집게가 갇히는지 현장 실험에 나섰다. 자연적인 폐타이어 상태를 재현하기 위해 관찰에 들어가기 전 1년 6개월 동안 타이어를 해저에 방치해 조류가 부착하고 펄에 일부가 묻히도록 했다.

관찰 결과 6개의 타이어에 모여든 집게는 모두 1278마리에 이르렀다. 타이어 하나당 이틀에 한 마리꼴로 들어온 셈이다.

바다 밑에 타이어를 방치하고 1년 동안 수행한 실험. 계절마다 해조류에 덮이기도 말끔해지기도 하지만 집게는 빠져나오지 못하고 안에 계속 축적됐다. 소가베 아츠시 외 (2021) ‘왕립학회 공개과학’ 제공.
바다 밑에 타이어를 방치하고 1년 동안 수행한 실험. 계절마다 해조류에 덮이기도 말끔해지기도 하지만 집게는 빠져나오지 못하고 안에 계속 축적됐다. 소가베 아츠시 외 (2021) ‘왕립학회 공개과학’ 제공.

연구자들은 “버려진 어구 등이 ‘유령 어업’ 현상을 일으켜 해양 포유류, 바닷새, 바다거북, 물고기, 연체동물 등 다양한 동물을 지속해서 죽이는데 이번 연구로 버려진 타이어가 비슷한 과정으로 집게에게 유령 어업을 한다는 사실이 드러났다”고 논문에 적었다. 일반적으로 유령 어구는 몇 달에서 3년 동안 피해를 일으키지만 타이어는 이보다 강인해 더 오랜 기간 집게에 해를 끼칠 것이라고 연구자들은 밝혔다.

연구자들은 집게가 실제로 타이어를 탈출하지 못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수조에서 타이어와 이 해역에 가장 흔한 긴눈집게를 넣고 관찰했지만 탈출 사례를 찾지 못했다. 시간이 지나면 타이어 표면에 수조가 자라고 부분적으로 펄에 덮이지만 내부는 여전히 매끈해서 탈출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연구자들은 현장과 수조 실험에 쓴 집게는 모두 방류했다고 덧붙였다.

현장 실험에서 타이어에 가장 흔하게 갇힌 종인 긴발가락참집게의 몸. 김정년, 국립생물자원관 제공.
현장 실험에서 타이어에 가장 흔하게 갇힌 종인 긴발가락참집게의 몸. 김정년, 국립생물자원관 제공.

타이어에 갇힌 집게는 어떻게 될까. 집게는 포식자로부터 부드러운 몸을 지키고 성장에 맞추기 위해 끊임없이 새로운 조개껍데기가 필요하다.

연구자들은 “타이어 안에서 집게들은 먹이와 패각 껍데기를 차지하기 위한 극심한 경쟁을 벌였을 것”이라며 “심하게 손상된 패각 껍데기로 보아 타이어 안에서 서로 잡아먹는 동종포식이 일어났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폐타이어 속 집게의 집으로 쓰인 패각이 심하게 손상돼 있다. 연구자들은 타이어에 갇힌 집게끼리 극심한 먹이와 집 경쟁을 위해 동족포식이 일어났을 것으로 추정했다. 소가베 아츠시 외 (2021) ‘왕립학회 공개과학’ 제공.
폐타이어 속 집게의 집으로 쓰인 패각이 심하게 손상돼 있다. 연구자들은 타이어에 갇힌 집게끼리 극심한 먹이와 집 경쟁을 위해 동족포식이 일어났을 것으로 추정했다. 소가베 아츠시 외 (2021) ‘왕립학회 공개과학’ 제공.

세계적으로 해마다 2900만t의 폐타이어가 발생하고 이 가운데 90%가량이 재활용되지만 상당수는 매립되거나 방치 또는 불법 투기 되고 있다. 바다에서도 선박이나 접안시설의 완충재로 쓰이다 버려지고 홍수에 떠내려오거나 인공어초로 일부러 버리기도 한다. 미국 플로리다에서는 1970년대 인공어초를 조성한다며 바다에 타이어 200만개를 투입하기도 했다.

버려진 타이어는 마모돼 바다에서 미세플라스틱의 10%를 차지한다. 육상에서도 타이어의 유해물질이 녹아 물고기 등 생태계에 악영향을 끼치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고향에 돌아온 연어를 타이어가 죽인다). 이번 연구는 타이어의 성분뿐 아니라 형태도 문제가 되는 것을 보여준다.

패각 속에 몸을 숨긴 긴눈집게의 일종. 해안 먹이그물의 기초를 이루는 생물이다. 안드레아스 메르츠,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패각 속에 몸을 숨긴 긴눈집게의 일종. 해안 먹이그물의 기초를 이루는 생물이다. 안드레아스 메르츠,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폐타이어가 해저에서 적지 않은 수의 집게를 지속해서 제거한다면 연안 생태계에 큰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연구자들은 지적했다. 집게는 세계적으로 조간대에서 심해저까지 800여 종이 분포하며 쥐노래미 등 물고기와 바닷새의 먹이일뿐더러 바다의 죽은 동물과 식물을 제거하는 청소동물로 중요하다.

인용 논문: Royal Society Open Science, DOI: 10.1098/rsos.210166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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