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달이 북태평양의 찬 바다에서 저체온증에 걸리지 않는 이유는 많이 먹은 칼로리의 상당 부분을 곧바로 열로 바꾸기 때문으로 밝혀졌다. 마셜 헤딘,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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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알래스카 앞바다에 둥둥 떠 조개나 게를 돌로 쳐 먹는 해달의 모습은 태평해 보인다. 사람이라면 한 시간도 안 돼 저체온증에 걸릴 찬물에서 해달이 37도의 체온을 유지하는 비결은 흔히 알려진 두껍고 촘촘한 모피 덕분이 아니라 근육에서 열을 내는 독특한 대사 덕분이란 사실이 밝혀졌다.
트래버 라이트 미국 텍사스 에이 앤 엠 대 교수 등 미국 연구자들은 9일 과학저널 ‘사이언스’에 실린 논문에서 “가장 작은 해양 포유류인 해달이 혹독한 환경에서 살아남은 비결은 조직 안에서 벌어지는 과잉대사 덕분”이라고 밝혔다.
해달은 해양 포유류 가운데 가장 작고 유일하게 피하 지방층도 없다. 트래버 라이트 제공.
물에서는 열이 공기보다 23배 빠르게 빠져나간다. 이 때문에 고래나 북극곰 같은 해양 포유류는 피하에 두꺼운 지방층을 간직해 열전달을 차단한다.
그러나 해달은 수온 0∼15도의 찬 북태평양에 살면서도 지방층이 전혀 없다. 게다가 해양 포유류 가운데 몸집이 가장 작아 열이 달아날 표면적이 다른 동물보다 상대적으로 넓다.
이제까지 해달이 이런 역경을 딛고 생존할 수 있었던 것은 동물 가운데 가장 두꺼운 모피 덕분으로 알려졌다. 해달의 모피는 동물계에서 가장 두껍고 조밀하다.
해달의 털은 동물의 모피 가운데 가장 조밀하고 2중으로 되어 있어 물이 스며들지 않는다. 트래머 라이트 제공.
털가죽 1㎠에 무려 40만 가닥의 털이 나 있다. 털은 이중으로 나 있는데 길고 방수 기능을 하는 겉 털이 물이 스며드는 것을 막고 안에 있는 짧고 조밀한 털은 따뜻한 공기를 간직한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열 손실을 막기에 부족하다. 연구자들은 “해달은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같은 크기의 포유동물보다 기초대사율을 약 3배 높게 유지한다”고 논문에서 밝혔다.
다시 말해 뛰어난 기능의 모피 외에 많이 먹고 그 에너지로 체온을 유지하는 데 쓴다는 얘기다. 해달은 하루에 자기 체중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조개, 성게, 물고기 등을 잡아먹는다.
섭취한 에너지를 열로 바꾸는 일반적인 방법은 근육을 수축하는 것이다. 추울 때 몸이 떨리는 건 이 때문이다. 그러나 해달은 조직 차원에서 색다른 발열 메커니즘을 보유했음이 드러났다.
손을 맞잡고 물에 떠 잠자는 해달. 해달의 기초대사를 잘 이해하면 사람의 비만 문제를 해결할 길이 열릴지 모른다. 조 로버트슨,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연구자들은 해달의 세포 내 작은 기관인 미토콘드리아에서 다량의 열을 만들어 내는 것을 확인했다. 미토콘드리아는 세포가 생명활동을 하기 위한 동력을 제공하는 일종의 분자 배터리이다.
해달의 미토콘드리아는 생명활동에 필요한 배터리를 생산하는 일 말고도 당분을 분해해 직접 열을 만드는 일을 했다. 미토콘드리아의 열 생산은 포유류에서 동면 같은 특별한 상황이나 어릴 때 잠깐 나타나지만 해달은 어릴 때부터 성체가 될 때까지 이 능력을 유지했다. 연구자들은 “해달은 근육의 열 방출을 통해 체중 1㎏이 넘는 동물 가운데 가장 기초대사율이 높다”고 밝혔다.
해달은 거의 몸을 움직이지 않고도 에너지를 곧장 열로 바꾸어 칼로리를 소모한다. 추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서이지만 사람에게는 다른 이유로 관심을 끈다. 바로 비만 문제다.
라이트 교수는 “만일 조직 내 열 방출과 대사율을 어떻게 높일지 알아낸다면 이론적으로는 사람도 대사율을 높여 추가로 칼로리를 태울 수 있다고
‘아에프페(AFP)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인용 논문:
Science, DOI: 10.1126/science.abf4557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