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멀피플] 포식자 아가미 틈에 꼬리 넣어 입 탈출 긴 몸통 이용 연가시도 콧구멍·입으로 나와
필리핀 근처 심해에서 태어나 수천㎞를 여행한 실뱀장어는 작고 연약하지만 만만하게 잡아먹히지 않는다. 포식자의 입 안에서도 탈출하는 행동이 발견됐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실뱀장어가 포식자에 먹힌 뒤 상대의 아가미 틈을 꼬리로 비집고 거꾸로 헤엄쳐 빠져나오는 특별한 탈출 전략을 구사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가와바타 유키 일본 나가사키대 교수 등은 어린 뱀장어가 포식자의 아가미 틈으로 빠져 나오는 모습을 보고 실험한 결과 이런 행동이 어쩌다 우발적으로 일어난 것이 아니라 일반적인 탈출 행동으로 드러났다고 최근 ‘바이오아카이브’에 공개한 논문에서 밝혔다. 바이오아카이브는 정식 출판 전 사전심사를 거치지 않은 온라인 논문공유 사이트이다.
연구자들은 작은 물고기를 잡아먹는 육식어인 남방동사리와 실뱀장어를 함께 수조에 넣는 실험을 했다. 동사리는 어린 뱀장어를 보자마자 접근해 순식간에 물과 함께 삼켰다.
그러나 조금 지나자 동사리의 아가미 틈으로 실뱀장어의 꼬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뱀장어는 꿈틀거리며 좁은 틈을 비집으려 안간힘을 썼다.
뱀장어는 어둡거나 복잡한 곳에서 종종 후진으로 탈출한다. 실뱀장어의 모습. 한겨레 자료 사진
동사리도 수조를 돌아다니거나 머리를 벽에 비비면서 이를 막으려 했지만 상당수의 실뱀장어가 빠져나가는 것을 막지 못했다. 연구자들은 “포식자가 입에 넣은 실뱀장어 54마리 가운데 절반이 넘는 28마리가 아가미를 통해 탈출했다“며 “탈출한 뱀장어는 거의 대부분 생존했다”고 밝혔다. 포식자의 입에 들어가고부터 탈출할 때까지 걸린 시간은 평균 47초였다.
실뱀장어는 포식자로부터 어느 부위를 공격당했는지와 무관하게 모두 꼬리부터 탈출하는 행동을 했다. 아가미 틈으로 꼬리를 들이민 뒤 몸 전체를 꿈틀거리며 후진해 빠져나왔다. 연구자들은 “뱀장어는 갑작스런 위협을 느끼면 머리를 재빨리 움츠린다”며 “어둡고 복잡한 곳에서 재빨리 도망칠 때는 뒤로 헤엄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연가시는 숙주인 귀뚜라미의 뇌를 조종해 산란지인 하천에 뛰어들도록 한다(a). 그러나 연가시가 귀뚜라미 몸에서 미처 빠져 나오기 전에 물고기나 개구리가 귀뚜라미를 삼키곤 한다. 연가시는 개구리의 입(b) 물고기의 코(c)나 아가미(d)를 통해 빠져 나간다. 철사처럼 긴 몸통을 이용한 탈출 전략이다. 플라워 폰툰 외 (2006) ‘네이처’ 제공
실뱀장어가 이런 탈출방법을 구사할 수 있는 것은 긴 몸통 형태 덕분일 것으로 연구자들은 보았다. 어류는 아니지만 몸이 길쭉한 기생동물인 연가시도 물고기에 먹힌 뒤 아가미를 비집고 탈출한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연가시는 숙주인 귀뚜라미나 메뚜기의 뇌를 조종해 자신의 산란지인 하천에 뛰어들도록 유도한다. 연가시는 몸이 커 숙주의 몸에서 물로 빠져나오는데 10분쯤 걸린다.
미처 연가시가 빠져나가기 전 물고기나 개구리가 곤충을 삼키는 일이 종종 벌어진다. 플라워 폰툰 등은 2006년 과학저널 ‘네이처’에 실린 논문에서 숙주와 함께 먹힌 연가시가 물고기나 개구리의 입, 코, 아가미를 비집고 탈출한다고 보고했다.
실뱀장어의 탈출도 얼룩메기, 넙치농어 등 큰 입으로 먹이를 흡입해 삼키는 포식자에 적응해 진화했을 것으로 연구자들은 추정했다. 실뱀장어는 이미 산란지에서 수천 ㎞를 이동하는 노력을 했기 때문에 포식자에 먹히지 않도록 특별한 탈출 전략을 고안했다는 것이다.
실뱀장어로 변태하기 직전의 댓잎뱀장어. 뱀장어는 담수어에서 심해어로 알에서 댓잎뱀장어와 실뱀장어, 뱀장어 등 다양한 형태로 몸을 바꾼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동아시아의 뱀장어는 모두 필리핀과 괌 사이 해저산맥에서 번식한다(▶3천km 여정의 비밀…뱀장어는 여전히 신비롭다). 알에서 깬 댓잎뱀장어는 조류를 타고 수천 ㎞를 이동한 뒤 대륙붕 근처에서 실뱀장어가 돼 고향인 하천으로 향한다.
인용 논문: bioRxiv, DOI: 10.1101/2021.06.08.447630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