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토코리아의 ‘보리’ 인턴은 반려인 이효원 대표(오른쪽)를 따라 1년째 사무실로 출근하고 있다. 인스타그램 ‘보리인턴’으로 보리의 일상과 반려인을 위한 지식콘텐츠가 소개되고 있다. 박지영 사원은 보리의 ‘고구마누나’로 통한다.
개와 함께 출근하는 건 어떤 일상일까. 개는 좋아할까? 반려인은 어떤 걸 주의해야 할까? 우리 회사에서도 가능할까? 반려인이라면 한 번쯤은 꿈꿔본 ‘반려견과 함께 출근하기’를 실천 중인 이들을 만났다. 이들은 최근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를 담은 ‘세상에서 가장 귀여운 직장 동료, 보리인턴’이라는 그림책을 냈다.
지난 12일 오후, 서울 용산구의 한 사무실을 방문하자 푸들 한 마리가 먼저 달려 나왔다. 푸들의 반려인이자 책의 저자인 이효원(24) 대표와 박지영(23) 사원이 따라 나왔다.
몸뿐만 아니라 눈도, 코도, 발바닥도 갈색인 푸들 보리(수컷, 4살)는 가방걸이 액세서리를 만드는 스타트업 ‘페토코리아’의 인턴사원이다. 대표 포함한 직원 3명과 같이 지낸다. 보리가 출근한지도 벌써 1년이다. 누나가 출근할 때면 데려가달라며 이동장 가방에 미리 들어가 있을 만큼 익숙해졌다. 인스타그램으로 인턴 생활과 반려인을 위한 펫 상식 등을 소개하는데 친구만 1만2600명인 ‘멍스타’이기도 하다. 발랄한 모습으로 손님을 맞이하던 보리가 어느새 이 대표 품에서 잠이 들었다.
12일 용산 원효전자상가의 사무실에서 보리가 인터뷰 중인 반려인 이효원 대표의 무릎 위에서 잠든 모습.
“제가 일이 많아서 밤 새는 때가 많아요. 집에 잘 못 들어가는데 부모님도 일 때문에 집을 비우시는 일이 많으셔서 데리고 다니기 시작했어요. 물론 보리가 가기 싫어할 때나 제가 바쁠 때에는 보리랑 같이 출근하지 않아요.”(이효원)
보리가 출근하게 된 데에는 강아지를 좋아하는 직원들의 요청이 있었다. 혼자 있는 보리가 걱정돼 데리고 나오긴 했지만 직원들의 동의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혼잡한 출퇴근 시간 대중교통을 타고 시내로 나오는 길이 편하지 않았다.
“누군가 강아지를 싫어하는 눈치가 보이면 먼저 자리를 피했”고 ”구석 자리를 선점해 팔로 (보리 이동장을) 가리는“ 방법을 구사했다. “사람들에게 피해를 안 줘야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보리가 이동장 밖으로 머리를 빼꼼 내밀었을 때“는 더욱 긴장됐다. 그나마 보리는 사회화훈련이 잘된 편이라 낯선 환경, 낯선 사람에 대한 거부감이 없어 다행이었다.
개랑 함께 사는 게 낭만적인 순간만 있는 게 아니듯, 개와 함께 출근하기는 매 순간이 도전이었다. 사무실 구하기부터 난관이었다. 창업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회사라 공유사무실(코워킹스페이스)을 주로 사용했는데 반려견 동반이가능한지, 독립형 공간인지 먼저 확인했다. 입주하고 나서도 개가 있음을 알리고 양해를 구해야 했다.
“반려견 출입이 가능한 사무실을 구하기 쉽지 않았어요. 건물 관리자가 가능하다고 해서 입주하긴 했는데 알고 보니 선례가 없었던 거에요. 다른 사무실 사람들에게도 양해를 구해야 하고…. 혼란스러웠죠. 다행히 20여개 다른 사무실 모두 반대하지 않았어요.”(이효원)
반려동물 입장을 환영하는 건물이 늘고 있지만, 이 대표는 보리와 함께할 공간을 찾으면서 대부분의 건물주가 건물에 동물이 머무는 것을 반기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됐다. ‘노키드존’이 있어 심란한 아이 부모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됐다고 한다.
입주해서도 공동생활을 위한 원칙을 지키는 게 중요했다. 보리의 배변 습관을 파악해 대처할 수 있어야 쾌적한 업무 공간이 유지될 수 있었다. 이 대표가 출근하면서 자연스럽게 산책을 시키며 한 차례, 오후 3시쯤 또 한 번의 산책으로 한 차례, 보리는 하루 두 번의 배변을 밖에서 해결하고 있다. 산책 담당은 대표 포함해 가위바위보로 정한다. 비가 와 산책이 불가능한 날에는 아예 출근하지 않는 특단의 조치를 내렸다.
“초반에는 보리가 건물 벽에 마킹할까 봐 기저귀를 채웠어요. 자기 공간이라고 안정감을 느끼고부터는 마킹한 적이 없어요. 산책을 시켜주고 오면 사무실에서 오줌을 안 싸니까 산책은 꼭 시켜요.”(박지영)
또 보리를 보는 당번이 필요해 밥 먹으러 따로따로 나가야 하고, 회식할 때도 보리가 있어 개가 출입 가능한 식당을 찾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보리와 함께 퇴근하기 때문에 술을 전만큼 자주 마실 수 없다는 건 장점이었다.
무엇보다 개가 있으면 일에 집중이 안 되는 건 아닐까. 거래처 직원들과 하는 회의 상황은 문제없을까. 이들은 보리가 있어 업무적으로는 나쁜 것보다 좋은 게 더 많다고 입을 모았다.
“직원들과 의견 충돌이 있을 때 보리를 화두로 좋은 분위기가 조성”될 수 있고, “일이 많아 힘들 때가 있지만 우리만의 부드러움과 순수함을 잃지 않게 해주는” 게 다 보리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개가 있어 싫다는 사람은 외부에서 만나”면 된다.
“개가 있어 산만하지 않냐고요? 보리도 혼자 잘 놀아요. 업무 열심히 하다가 숨 한번 크게 쉬고 싶을 때 보리 한 번 보는 거죠.”(이효원)
“너무 바쁠 때는 못 놀아줘요. 보리가 아련하게 쳐다보는데 어쩔 수 없죠. 그럴 때는 노즈워크(후각으로 장난감 또는 음식을 찾는 놀이)를 하게 하는데 한 시간 놀다 지쳐 잠들어요.”(박지영)
보리는 이 대표나 박 사원의 무릎 위에 앉아있는 걸 좋아한다. 일 하는 데 방해가 되지 않냐는 질문에 이들은 전혀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보리가 이효원 대표 무릎 위에 있는 모습.
즐겁게 일하는 이들이지만 반려견과 함께 출근하는 걸 무조건 장려하지는 않았다. 대중교통을 탈 때 개와 사람 모두 안정감을 느낄 자신이 있는지, 반려견이 함께 해도 되는 업무 환경인지, 다른 직원 중에 강아지를 싫어하거나 알레르기를 가진 사람이 있는지, 개가 스트레스받지는 않는지 등 닥칠 현실을 그려보고 결정하라고 조언했다.
“저는 직원들이 지지해 보리를 데려왔는데 문뜩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보리는 편할까? 보리는 사람을 좋아하니까 괜찮은데 낯선 환경을 싫어하는 아이라면 안 데려오는 게 맞겠죠. 만약 회사를 바꿀 자신이 있으면 동반 출근 제안서를 내고 개척자가 되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아요.”(이효원)
“보리가 오는 날이면 즐거웠어요. 예전에는 강아지가 귀여우니까 키우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반려인의 삶을 지켜보니 더 많이 공부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박지영)
글·사진/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