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집사의 옆구리에 올라탄 희한한 자세로 식빵을 굽는 중인 라미.
언제부턴가 ‘그 보모 이모’가 좀 자주 오긴 했다. 어쩔 땐 와서 ‘냥케어 필수 3종 세트’인 밥 주고, 물 주고, 화장실 치워주는 일도 하지 않고 가버리기도 했다. 그 일이 아니라면 이모들이 오는 일은 없었는데…. 그랬는데, 한달 전부터 ‘그 보모 이모’는 밤이 되어도 집에 가지 않았다. 그랬다. 추가 집사이자 새 집사가 된 것이었다.
그 이모, 아니지, 새 집사는 몇 가지 좋은 점이 있었다. 우선 ‘헌 집사’에겐 없는 치렁치렁한 머리카락이 있었다. 밤이 되면 그 머리카락에서 향기로운 냄새가 났다. 헌 집사가 밤에 우리와 놀아주지 않은 지는 오래됐는데, 새 집사는 그래도 나와 보들이가 예쁘다며 안아주기도 했다. 그러면 난 그 머리카락과 씨름하면서 사냥놀이를 대신했다. 보들이는 가만히 냄새만 맡았다.
새 집사는 좀 상냥했다. 함께 살기 시작한 초반이라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나와 보들이에게 바르고 고운 말만 했다. 누구처럼 “너네들 말 안 들으면 모란시장에 팔아버린다” 따위의 멍멍이들한테도 안 통할 시대착오적인 협박 따윈 하지 않았다.
싱크대에 오를 일도 많아졌다. 새 집사가 오고 나니 국에 말아 먹고, 3분 카레에 비벼먹던 헌 집사의 식단이 좀 나아졌다. 밑반찬이라는 게 등장하기 시작했고 뭘 굽기도 하고 찌기도 했다. 난 자연스레 싱크대에 올라가는 일이 많아졌는데, “아 진짜, 피곤하네, 좀 내려가라”며 구박하던 헌 집사와 달리, 새 집사는 내가 털을 날리고 음식에 코를 갖다대도 야단치지 않았다. 난 밥상머리에선 예전과 달리 차분함을 유지했는데, 그러자 또 새 집사는 “우리 라미 예전보다 훨씬 얌전해졌다”며 먹던 생선을 발라주기도 했다.
새 집사가 온 7월 중순부터 이거 뭐 고양이 잡는 무더위가 시작됐는데, 새 집사 덕분에 작년 여름보다 에어컨을 많이 켤 수 있는 것도 좋았다. 짠돌이 헌 집사는 어지간히 덥지 않으면 에어컨을 틀지 않았는데 더위에 민감한 새 집사 덕분에 집사들의 퇴근과 동시에 다음날 출근할 때까지 쾌적한 밤을 보낼 수 있었다. 두 집사들은 7월 말부턴 아예 에어컨이 있는 마루에서 잤는데, 그것도 좋았다. 1년 넘게 집사와 각방을 쓴 탓에 새벽에 깨면 할 게 없었는데, 잠든 집사들을 밟거나 머리카락을 뜯으면서 아침밥 급식기가 열리기를 기다릴 수 있었다.
새 집사가 오니 새로운 즐길거리도 생겼다. 헌 집사가 나무조각들을 조립해 만든 게 새로 생겼는데, 새 집사는 아침마다 거기 앉아서 얼굴에 뭔가를 발랐다. 나도 새 집사처럼 뒷발은 의자에 앞발은 그 나무탁자에 올려놓고 보니 내 얼굴이 보였다. 그런 나를 본 새 집사는 또 “우리 라미 이쁘다”며 박수를 쳤다. 새 집사가 워낙 나를 예쁘다고 해서 헌 집사에겐 잘 하지 않던 ‘꾹꾹이’(앞발로 사람이나 사물을 누르는 행동으로 고양이의 대표적 애정 표현)를 한번 해줬더니 또 좋아라 했다.
한때 “고양이 두 마리랑 그냥 평생 살 거”라던 헌 집사가 새로운 인간을 데려오면서 나나 보들이한테 양해를 구하지 않은 것은 좀 유감이긴 했다. 나는 유감 정도로 그쳤지만 보들이는 유감에 유감을 더해 며칠 동안 식사량을 줄이는 ‘감식투쟁’을 하기도 했다. 물론 차마 단식투쟁에 이르진 못하고 이내 예전 식사량을 회복했다.
서대문 박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