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펫사료협회가 지난해 반려인 518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개 사료를 대형마트에서 산 적 있다는 응답이 53.5%(중복응답)였다. 온라인 쇼핑몰은 57.9%로 가장 높았다. 동물병원과 약국이 22.2%였다. 전문가는 처음 사료를 살 때는 소량만 사 먹여보고 2주 이상 잘 먹을 때 추가 구매하기를 권했다. 게티이미지뱅크
지난 11일 서울 서초구의 한 마트에서 확인한 1.5㎏의 개 사료 앞면엔 크게 ‘닭고기’ 또는 ‘오리고기’라고 적혀 있었다. 그러나 사료 옆면에 작게 표시된 원료 이름을 보면 첫번째로 나오는 주원료가 ‘닭고기 분말’과 ‘오리고기 분말’이었다. 닭고기나 오리고기는 세번째였다. 분말을 사용했다고 사료의 안전성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분말로 만드는 고기의 원료나 제조 과정은 분명 그냥 고기와는 다르다. 소비자는 허위·과장 광고에 속지 않기 위해서 사료 포장지에 적힌 성분표시를 꼼꼼히 살피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사료 포장지는 진실만을 담고 있을까.
사료관리법에 따라 사료 포장지 표시 사항 검사와 성분 검정은 농림축산식품부 소속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과 시·도지사가 맡는다. <애니멀피플>이 14일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과 서울시, 경기도, 인천시에 확인한 2017년 사료관리법 위반 사례를 보면 사료 회사들의 ‘실수’ 또는 ‘꼼수’를 알 수 있다.
원료의 이름이나 형태, 제조연월일, 주의사항, 제조업자의 주소 등의 누락 또는 오기, 암·고혈압·관절염 같은 질병을 예방할 수 있다는 허위 과장 광고, 조단백질·조회분 등 성분 함량 부족 또는 초과 같은 성분 등록 이상이 주로 문제가 됐다.
‘운 없으면 걸린다’
인천시는 가열하지 않은 생고기로 사료를 만든 업체를 경찰에 고발한 적이 있다고 밝혔다.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은 누락·오기 90건, 허위과장광고 44건, 성분 등록 이상 2건으로 총 136건(누락·오기·허위과장광고는 반려동물 사료를 포함한 전체 사료 통계)이라고 밝혔다. 경기도는 60건의 위반 사례 중 반려동물 관련 사료만 54건이었다. 해당 업체는 과징금 징수나 1개월~영구 영업정지 등의 행정처분을 받았다.
담당 기관의 관리감독은 시중에 나와 있는 사료 중 일부만 골라 이뤄진다. 그러다 보니 업계에선 ‘운이 없으면 적발된다’는 말이 나온다. 특히 대기업 사료 회사들은 과징금을 내면 그만이라는 반응이다. 이는 통계로도 확인된다. 2013년부터 지난해까지 한 지방자치단체에서 사료관리법을 위반해 행정처분을 받은 건수는 모두 33건에 불과했다. 또다른 지자체 담당 공무원은 “인력이 부족하니 민원이 들어왔을 때만 검사를 나간다. 민원은 보통 동종업계 사람들이 많이 한다”고 말했다.
동물이 사람보다 단백질 필요량이 높지만 탄수화물도 먹어야 한다고 한다. 개 사료 40~45%, 고양이 사료 25%가 탄수화물 성분이라고 한다. 게티이미지뱅크
제조사가 사료에 들어가는 원료 비율이나 중량을 공개할 의무는 없다. 보호자가 사료 포장지를 아무리 들여다봐도 주원료의 비중이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없다. 사료관리법에 따라 많이 들어간 원료를 순서대로 적어야 하지만, 앞쪽에 적힌 원료의 중량 또는 비율이 어떻길래 그렇게 표기되는지 알 길은 없다.
“포장지만 봐선 모른다”
이에 한 사료 회사 관계자는 “포장지만 봐서는 사료를 절대 알 수 없다”며 “예를 들어 ‘곡류’가 40%, 육류가 30%일 때 이를 쌀(14%), 옥수수(15%), 완두콩(11%)으로 세분화하면 각 곡물이 차지하는 비중이 낮아진다. 그러면 표기 순서가 뒤로 밀리면서 육류를 곡류보다 앞에 적을 수 있다. 국내에서는 고기를 많이 쓰면 좋은 사료라는 인식이 있기 때문에, 주원료가 곡물이 아닌 것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 이용하는 꼼수”라고 말했다.
또 소량의 사료는 순서대로 적지 않아도 된다. 농림부 고시인 ‘사료 등의 기준과 규격’에는 ‘중량 비율 2% 미만인 경우에는 함량 순서에 따르지 않고 표시할 수 있다’고 나와 있다. 만약 극소량의 좋은 원료를 사용했다면, 그 원료 이름을 중량 비율 2% 미만 사료 중 최대한 앞으로 끌어내 표기할 수 있다는 말이다.
또 다른 사료 회사 관계자는 “원료의 8~9번째까지만 순서대로 쓴다는 말이 있다. 뒤쪽에 나오는 원료는 순서대로 안 써도 되기 때문에 광고하고 싶은 원료를 최대한 앞에 적는 회사들이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소비자의 알 권리를 위해서라도 주원료들의 배합 비율은 표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포장지를 본다고 보호자가 모든 원료를 알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사료관리법에는 사료에 들어간 원료를 전부 표기하게 되어있지만, 업계에서는 미네랄 같은 미량의 성분은 일일이 적지 않거나 뭉뚱그려 표기한다고 답했다.
또 수입 사료를 한국어로 번역해 표기할 때 그 기준이 따로 없다. 어감상 좋은 단어를 써서 진실을 감추려는 회사들이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육분’(고기를 갈아서 수분을 없앤 가루)이라고 적지 않고 ‘밀’(meal), ‘건어’(말린 생선) 등으로 표기해 고급 재료를 사용한 것 같이 눈속임을 한다고 한다. 원칙은 ‘육분’이라고 적어야 한다.
그렇다면 보호자들은 어떤 사료를 먹여야 할까. 조우재 제일사료 수의영양연구소장은 “원료를 보라고 광고하는 제품이 많은데 그게 정답은 아니다. 좋은 사료를 고르는 확실한 방법은 2주 정도 동물이 잘 먹고 잘 배변하는 걸 확인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조 소장은 또 “각 사료의 순기능이 없어질 수 있으니 여러 사료를 섞여 먹이는 것은 추천하지 않는다. 다만 성장기에 있는 어린 동물은 다양한 사료를 먹여 알레르기 반응이 있는지 미리 확인해보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