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마포구 아현동의 보신탕집. 1시간 동안 40여명이 다녀갔다. 안예은 교육연수생
전국에 폭염주의보와 경보가 내려졌던 16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초동의 개고기 전문 식당에서는 직원들이 달그락거리며 밥그릇과 숟가락 정리에 정신없었다. 사장은 취재를 하러 왔다는 기자에게 “만땅이야”, “동물단체랑은 얘기도 안 해”라며 문전박대를 했다. 식당 입구에 예약자명이 빼곡히 적힌 화이트보드가 눈에 띄었다.
오전 11시30분 개장과 동시에 손님들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이곳은 한 골목길에 개고기 식당 두 집이 나란히 있다. 두 집은 무항생제, 1등급 고기만을 쓴다거나 직접 농장을 운영한다고 소개하고 있었다.
두 집 다 좁은 주차장이 금방 찼다. 12시30분까지 한 시간 동안 왼쪽 집은 120명(남 96, 여24명), 오른쪽 집 26명(남24, 여2명)이 찾았다. 직장인이 많은 지역답게 셔츠를 입은 남성들이 많았다.
두 집 모두 삼계탕을 함께 팔았다. 왼쪽 집 사장은 17일 ‘애니멀피플’과의 통화에서 “보신탕이 10그릇이라면 삼계탕은 2그릇(판다)”이라고 설명했다. 그의 말대로라면 점심에만 개고기 100인분을 판 셈이다. 오른쪽 집 사장은 취재를 거부했다.
같은 시각 개고기만 파는 서울 마포구 아현동의 한 식당에는 40여명이 다녀갔다. 서초동과 비교해 중년의 남녀가 많이 찾았다. 식사를 마치고 나서는 자영업자 황아무개(48)씨는 “1년에 한 번씩 먹는다. 먹을 사람은 먹으면 되고 안 먹을 사람은 안 먹으면 된다”라고 말했다.
초복인 17일 점심에도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서울 관악구의 30년 된 개고기 식당은 1시간 동안 68명(남자 48명)이 다녀갔다. 이곳도 삼계탕을 함께 판매하고 있었다. 근처 직장인과 공사현장 노동자, 주민 등 손님 구성은 다채로웠다.
수육을 먹고 나왔다는 60대 남성은 “젊은 사람들은 삼계탕, 나이 든 이들은 사철탕. (주문이) 반반”이라고 말했다. 사철탕을 먹었냐는 기자의 질문에 처음에는 사철탕을 먹었다고 답했다가, 개식용 논란을 의식해서인지 자신은 삼계탕을 먹었다고 말을 바꾸는 이들이 여러 명이었다. 청와대에 20만명 가까운 사람들이 개식용 금지를 청원한 기사를 봤다며 개를 먹을 때마다 마음이 좋지 않다는 이도 있었다. 서울 강북구의 소형 개고기 식당은 1시간 동안 12명(남자 9명)이 다녀가 상대적으로 한산했다.
지난 16일 서울 서초구의 한 보신탕집. 낮 12시도 되기 전에 4대를 주차할 수 있는 주차장은 만석이 됐다. 또 다른 보신탕집 역시 마찬가지였다. 뒤에 온 손님들은 먼 곳에 주차하고 식당으로 들어갔다. 최우리 기자
동물해방물결 주최로 ‘2018 황금개의 해 복날추모행동'이 열린 17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참가자들이 농장서 폐사한 개 11마리의 사체를 들고 장례 행위극을 하고 있다. 이들은 이날 행사에서 정부를 향해 개 도살 금지 방안 마련을 촉구하며 구호를 외친 뒤, 폐사한 개들의 장례를 지내는 의미로 꽃상여를 들고 행진해 청와대에 '개 도살 금지 촉구 서한'을 전달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개식용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늘고 있지만, 올해도 개고기 식당은 여름철 보양식을 먹겠다며 찾아온 이들이 적지 않았다. 다만 전통을 강조하거나 삼계탕을 함께 팔거나 농가 직거래를 홍보하는 식으로 저마다 ‘개식용 종식’ 바람에 맞서고 있었다.
개 사육농민들의 단체인 육견협회도 느긋한 입장이다. 주영봉 대한육견협회 사무총장은 17일 ‘애니멀피플’과의 통화에서 지난달 리얼미터가 50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여론조사 결과를 강조했다. 개고기 식용 금지법에 대해 반대하는 여론이 51.5%로 절반 이상으로 나온 결과에 매우 만족해했다. 주 사무총장은 “에스비에스(SBS) 라디오, 케이비에스(KBS) 아침마당 등 방송사에서도 (우리에게) 발언할 기회를 많이 주고 있다. 긍정적인 신호”라고 덧붙였다.
육견협회는 개고기 식당의 메뉴 다변화와 유통망이 붕괴한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자신감을 잃지 않았다. 믿는 곳이 있었다. 대부분의 식당이 삼계탕을 함께 팔고 있다는 것에 대해 주 사무총장은 “(그런 집은 도태되고) 앞으로 보신탕 잘하는 집만 남을 것”이라고 해석했다. 개고기 유통량 자체가 부족해지면서 도축, 도소매 유통 과정이 생략되고
농가와 식당 상인이 직거래하는 방식으로 바뀌면서 산업의 구조가 붕괴하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업계 전체로는 바람직하지 않은 현상”이라면서도 “(직거래가 아닌) 기계화된 도축장을 거치는 방향으로 갈 것”이라고 말했다. 기존의 재래식 도축 과정을 기계화하고, 이런 설비를 갖출 수 있는 대규모 개농장 위주로 산업 구조를 재편하겠다는 말이었다. 육견단체가 주장해오던 개고기 합법화와 같은 논리였다.
동물해방물결 주최로 ‘2018 황금개의 해 복날추모행동'이 열린 17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참가자들이 정부를 향해 개 도살 금지 방안 마련을 촉구하며, 폐사한 개들의 장례를 지내는 의미로 꽃상여를 들고 청와대로 행진하고 있다. 이들은 이날 청와대에 ‘개 도살 금지 촉구 서한'을 전달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문재인 대통령 반려견 ‘토리'가 17일 오후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개식용 반대 집회에 나왔다. 동물권단체 케어 제공
한편 동물보호단체는 개식용 종식을 위해 입법 활동에 주력하고 있다. 이상돈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축산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해 가축에서 개가 제외되면, 식용견 농가의 법적 근거가 사라지게 된다.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동물을 죽이면 안 되는 원칙을 명시한 동물보호법 개정으로 개 도살을 막겠다는 계획이다. 또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폐기물관리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개농장의 존립 근거가 되는 음식물쓰레기 사료화가 불가능해질 것으로 기대한다.
이날 서울 광화문과 시청 일대에서는 개식용 금지를 촉구하는 여러 행사가 진행됐다. 동물해방물결은 식용견 농장에서 죽은 개 사체 10구를 가져와 개들을 추모하는 장례퍼포먼스를 했다. 동물권단체 케어와 동물권행동 카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반려견 ‘토리’와 ‘마루’처럼 개농장의 개들이 자유로워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카라와 휴메인소사이어티인터네셔널(HSI)은 말복까지 ‘입이 시커먼 개(입시견)’ 프로젝트를 통해 입 주변이 검은 도사견은 반려견이 아니라 식용견이라는 편견을 깨자는 온라인 캠페인을 한다.
동물권행동 카라의 김현지 정책팀장은 “여름 한 철 장사이기 때문에 식당은 대목을 맞았을 것”이라며 “농가나 식당이나 양극화가 심해지면서 결국 대형이거나 유명한 곳, 재정적으로 안정된 곳만 남을 것이다. 정부는 가능한 단속들을 해나가며 영세한 농가와 식당부터 전폐업을 지원하고 대규모 농가나 대형식당의 경우에도 종식을 전제로 동물복지를 포함한 단속을 하며 규제해 나가야 한다”라고 말했다.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 안예은 교육연수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