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유대를 나누던 동료 개를 잃은 개는 커다란 상실 스트레스를 겪는다. 개를 여러 마리 기르고 노령화가 늘어나면서 새로운 복지 문제가 될 전망이다. 게티이미지뱅크
반려견을 영원히 떠나보낸 반려인이 겪는 슬픔과 우울은 ‘펫 로스 신드롬’으로 사회적 관심사가 됐다. 그런데 함께 살던 개가 죽으면 나머지 개도 식욕이 떨어지고 무력감에 빠지는 등 사람과 비슷한 슬픔을 겪는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페데리코 피로네 이탈리아 밀라노대 수의학자 등 국제연구진은 개를 2마리 이상 기르다 한 마리가 죽은 경험이 있는 이탈리아 성인 426명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 결과 “개들은 유대가 깊던 동료가 죽은 뒤 크게 상처를 받는 것으로 드러났다”며 “이들이 고통에서 벗어나도록 도움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25일 과학저널 ‘사이언티픽 리포츠’에 실린 논문을 보면 조사 결과 개 주인의 86%가 동료 개의 죽음 뒤 나머지 개에서 부정적인 행동 변화를 관찰했다.
고래나 코끼리 같은 사회성 동물은 애도 행동을 보이지만 개는 상실감을 식욕 감퇴, 활동력 저하 등 다양한 형태로 보인다. 픽사베이 제공.
가장 흔한 반응은 주인의 관심을 더 많이 끌려는 행동으로 67%를 차지했으며 덜 놀거나(57%) 덜 활동적이고(46%) 잠을 더 자고 두려움이 많아지며(32%) 덜 먹는다(30%)는 반응이 뒤따랐다. 개 주인의 3분의 1은 이런 변화가 2∼6달 동안 지속했다고 대답했지만 1년 이상 이어졌다고 대답한 사람도 4분의 1에 이르렀다.
동료의 죽음을 슬퍼하고 애도하는 듯한 행동은 사회성이 발달한 코끼리, 돌고래, 영장류, 새 등에서 자주 발견된다. 이들은 죽은 동료의 냄새를 맡고 만지거나 둘러싸는 등의 행동을 보인다(▶
동물도 가족의 죽음을 슬퍼하나요?).
그러나 개들은 죽은 동료를 잠깐만 볼 수 있거나 대부분 아예 보지 못한다. 따라서 개에서 직접적인 애도 행동을 보기는 힘들다. 연구자들은 “가까웠던 동료와 헤어지는 데 따른 반응을 평가할 수 있을 뿐”이라며 “개에게 슬픔과 비슷한 행동은 분리 반응 형태로 나타난다”고 밝혔다.
개들은 동료의 죽음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상실을 이해한다. 2∼5살 아이와 비슷하다. 픽사베이 제공.
연구자들은 개의 이런 반응을 어린아이와 비교했다. 개의 인지능력은 2∼3살 난 어린아이와 비슷하다고 알려진다. 연구자들은 “2∼5살 아이는 죽음의 개념을 알지 못할 수 있지만 돌보는 이를 잃었다는 개념이 흔히 슬픔과 애도로 일컬어지는 행동을 하게 된다”며 동료 잃은 개의 반응도 이와 비슷한 것으로 해석했다.
개들의 이런 행동은 서로 협동하고 행동을 일치하는 경향이 강한 사회적 동물의 습성에서 비롯된다고 연구자들은 밝혔다. 실제로 설문 결과 동료와 먹이를 공유하던 개일수록 동료가 죽은 뒤 활동을 줄이고 잠을 더 자는 경향을 보였다.
이런 결과가 슬픔에 빠진 주인의 감정이 개에게 투사돼 나타나는 것 아니냐는 의문이 들 수 있다. 그러나 연구자들은 주인에 대한 설문조사에서 “개를 잃고 슬픔에 빠지거나 개를 의인화하는 정도와 개의 반응 사이에는 상관관계가 나타나지 않았다”고 밝혔다.
한 가지 예외는 주인이 개를 잃고 느끼는 고통, 분노, 심리적 트라우마가 클수록 동료를 잃은 개의 공포 수준도 높았다는 점이다. 연구자들은 “개는 주인이 슬퍼하고 화를 내는 모습과 소리, 냄새로부터 불안과 두려움을 느낀다”며 이를 “감정적 전염”으로 불렀다.
연구자들은 “이번 조사에서 드러난 개들의 반응을 정확히 ‘슬픔’이라고 규정할 수는 없다”며 “동료를 잃은 개가 반응하는 대상은 ‘죽음’ 자체보다 친구의 ‘상실’일지 모른다”고 밝혔다. 따라서 “개를 여러 마리 기르는 집과 노령견이 늘어나는 추세를 고려하면 이런 동료 상실 스트레스는 우리가 몰랐던 복지 문제”라고 연구자들은 밝혔다.
우리나라에서 개를 2마리 이상 기르는 가구에 관한 통계는 없지만 농림축산식품부의 2021 동물보호 국민의식조사를 보면 우리나라 사람은 가구당 평균 1.19마리의 개를 기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용 논문:
Scientific Reoports, DOI: 10.1038/s41598-022-05669-y
조홍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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