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사회일반

“새정부에 기대해봤지만…바뀐게 하나도 없어”

등록 2014-02-24 22:19수정 2014-02-25 11:28

강원도 횡성의 축산농민들이 22일 오전 횡성읍 조곡리에서 열린 소 경매시장에서 경매 상황을 살펴보고 있다. 횡성에서는 매달 2·12·22일 횡성 축산농민들만 참여할 수 있는 소 경매시장이 열린다.  횡성/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강원도 횡성의 축산농민들이 22일 오전 횡성읍 조곡리에서 열린 소 경매시장에서 경매 상황을 살펴보고 있다. 횡성에서는 매달 2·12·22일 횡성 축산농민들만 참여할 수 있는 소 경매시장이 열린다. 횡성/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박근혜 대통령 1년] ‘대선 만인보’ 민심기행 그후

<한겨레>는 2012년 18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시민 1000여명의 생생한 목소리를 들었다. ‘2012 대선 만인보-국토종단 민심기행’ 시리즈에는 전국 곳곳에서 좌절과 분노, 기대와 희망으로 어지럽게 들썩이던 민심이 날것 그대로 담겼다. 그해 12월19일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됐고, 25일 취임 1년을 맞는다. <한겨레>는 당시 ‘대선 만인보’를 기록했던 9개 지역 중 3곳을 다시 찾아가봤다. 그들에게 ‘지난 1년 안녕하셨습니까’라는 물음을 던졌다.

① 횡성 축산농가들
MB정부때 한-미FTA로 벼랑끝
“이젠 체념했어” 분노마저 사라져
작년 한우농가 200가구 넘게 줄어

■ 강원 횡성, 분노는 체념으로 “소 얘기는 더 하고 싶지도 않아요.” 손영진(53)씨의 목소리엔 좀처럼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다. 특유의 가늘고 빠른 목소리도 ‘소’라는 단음절 앞에선 무겁게 내려앉았다. 2012년 9월 만났을 때보다 더했다. 20일 찾아간 강원도 횡성의 재래식 축사 2채는 텅 비어 있었다. 그가 키우던 소 7마리는 지난해 봄 모두 팔려나갔다. 17마리로 시작한 축산업을 완전히 접었다.

손씨는 9년 전 횡성으로 이사와 소를 키우기 시작했다. 소값이 꼭짓점을 찍을 때였다. 매일 새벽 5시면 잠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사료를 주고 소똥을 치웠다. 남들은 톱밥을 깔아 1년에 두번만 똥을 치웠지만 손씨는 톱밥 값도 감당할 수 없었다. 품을 들여 돈을 아끼는 대신 축사 두채를 짓는 데 거금 3000만원을 썼다. 주업은 고물상이었다. 그는 2012년 4월 중순께 트럭에 고물을 싣고 시골길을 달리다 비탈길로 굴렀다. 보험에 들지 않은 탓에 수리비만 3000만원이 들었다. 이렇게 저렇게 빚은 2억원을 훌쩍 넘어섰다.

소는 그에게 마지막 기댈 언덕이었다. “축사에 소가 있었을 때는 마음이 든든했어요. 빚은 있어도 저거 키우면 얼마는 갚겠다 싶었으니까….” 비빌 언덕이 무너진 자리에는 또 낭떠러지가 있었다. 그는 “송아지 두마리를 250만원에 팔았다”고만 했다. 소를 팔아 거둔 돈이 얼마인지 기억하지 못하는 것인지, 기억하기 싫은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하필 내가 팔 때 소가 똥값이었어요. 지금은 더 올랐어. 운도 지지리 없는 거지.”

손씨는 해가 뜨기 전 트럭 시동을 건다. 횡성과 원주를 오가며 마대자루에 고물을 모으고 또 모은다. 해는 짧고 고물은 귀하다. 하루 종일 손가락을 꼽아보지만, 빚을 갚을 길은 까마득하다. “경기가 나쁘니까 고물도 안 버려요. 만날 빚내서 사는 거예요.”

그가 지지하지 않은 후보가 대통령으로 취임한 지 1년, 팍팍했던 삶은 부스러지기 직전인 듯 위태로워졌지만 그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믿고 있었다. “처음 당선됐을 땐 걱정도 됐는데… 걱정했던 것보다 잘하시는 것 같아요. 앞으로 4년도 기대해요. 뭐 그렇게, 희망을 갖고 살아야죠.”

2012년 9월 횡성 농민들은 분노로 들끓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관세를 낮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2007년 6월 타결됐고, 2008년 한-미 쇠고기 협상으로 수입이 재개됐다. 소값은 계속해서 떨어졌고 사료값은 올랐다. 횡성 우시장은 당시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욕설이 장날을 이뤘다. 1년5개월여 지난 지금, 분노는 체념과 포기로 바뀌어 있었다.

김수창(가명·55)씨는 당시 5000만원이던 빚이 2억여원으로 늘었다. “이명박 대통령 안 보는 게 소원”이라던 김씨의 목소리가 더는 괄괄하지 않았다. “그때는 너무 화가 났었던 거야. 이제는 체념했어. 기대라도 있어야 화를 내지. 횡성 농가들 다 그럴 거야. 이제 믿을 건 나밖에 없어.” 차분한 말투는 비장했다.

‘소’ 이야기가 나오자 그의 눈이 커졌다. “난 소에 목숨을 걸었어. 이게 마지막 직업이야. 소 키운 지 8년짼데 이제야 좀 어떻게 해야 할지 알겠더라고. 누가 미쳤다고 해도 난 좋은 암소를 백만원 더 주고서라도 사. 그리고 좋은 정액을 사다 품종을 개량하는 거야.” 박근혜 정부 출범과 더불어 농림수산식품부는 농림축산식품부로 이름을 바꿨고, 축산농가의 기대는 커졌었다. “이름 바뀔 때만 해도 기대를 했지. 그런데 바뀐 게 아무것도 없어.” 대선 전과 달리 더는 대통령을 욕하지 않는 김씨 역시 정부에 기대할 게 없다는 태도였다. 그저 스스로 살아남아야 한다는 ‘악’만 남아 있었다. 소에 대한 김씨와 손씨의 양극단의 감정은, 결코 다른 게 아니었다.

체념한 다수 축산농가들은 소를 팔아치우고 있다. 정부가 유도하는 바다. 지난해부터 정부는 축산업 구조조정에 나섰다. 경영이 어려운 축산농가에 지원금을 주고 폐업을 도와준다. 수소 한 마리에 81만1800원, 암소는 89만9560원이 정부 지원금이다. 폐업 지원금을 받으면 5년 동안 축산업을 못한다. 2008~2012년 1900가구를 항상 웃돌았던 횡성의 한우농가는 지난해 1692가구로 200가구 넘게 줄었다.


기초연금 공약 기다리는 할머니 “돈이 와 아직 안나오노”


② 군위군 김씨 할머니
머리맡 바구니엔 약봉지 수북
마실도 못나가 외로움에 시름
“나라에서 전동휠체어 줬으면…”

■ 경북 군위·의성, 여전히 외로움만 사무치는 나이든 마을 “가지 마라. 다시 오면 내 죽고 없다. 내 얼라처럼 기다리고 있을게. 꼭 다시 온나.” 김필순(가명·77) 할머니는 1년여 전보다 더 외로워보였다. 할아버지는 2010년 농약을 마셨다. 우울증이었다고 짐작만 할 뿐이다. “고함을 지르고 내한테 욕하고 술 많이 먹고, 한 3~4년을 그랬을 끼다. 세상에 이런 할마시 두고 죽으면 우야노.” 김 할머니가 사는 경북 군위군은 노인 인구 비율이 39.4%(2010년 인구주택총조사)로 전국 최고의 고령화 지역이다. 군위군 옆 의성군은 38.5%로 두번째다.

2012년 10월 할머니의 방문은 늘 열려 있었다. 누구든 찾아오면 조금이라도 먼저 알아채고 싶어서였다고 했다. 19일 다시 찾은 할머니의 방문은 꼭꼭 닫혀 있었다. 늦겨울 추위는 누군가를 기다리는 희망도 앗아간 것일까. 그밖에 달라진 건 없었다. 두서너 마디 말도 나누기 전에 “죽는 게 소원”이라는 추임새가 끼어들었다. 머리맡에 놓인 바구니에는 약봉지 7개가 수북이 담겨 있었다. ‘저림’, ‘수면제’, ‘입 아픔약’, ‘관절’, ‘진통제’, ‘설사’…. 약봉지에는 쓰임새를 구분한 글씨가 삐뚤삐뚤 적혀 있었다.

김 할머니는 “귓구멍이랑 콧구멍 빼고 다 아프다”고 했다. “더 나아진 거 같으면 내가 이카나. 밥맛이 없어 물에 말아 먹고 하루라도 얼른 가면 수월켔지만 안 간다.” 노년의 삶이 더 나아졌냐는 어리석은 질문에 김 할머니는 역정 낼 기운도 없어 보였다. 김 할머니는 약값과 병원비로 한달에 3만~4만원을 쓴다. 이마저도 헤프다고 할머니는 여겼다. 대통령 이름을 어설피 기억해 낸 할머니는 “내는 안 아프게 살고 싶은 거밖에 없다”고 말했다. “아프면 돈이 드니까….” 

전동휠체어가 김 할머니의 소원이다. 유모차처럼 생긴 노인보행기에 의지해 100m 남짓 떨어진 경로당까지 가는 데 40분이 걸린단다. 걸음마다 팔목 관절이 쑤시고 다리는 떨렸다. 뇌병변 장애 1급이면 군청에서 전동휠체어가 나온다고 한다. 군위군청 관계자는 “할머니가 기초생활수급자 1종이긴 하지만 뇌병변 장애 3급이기 때문에 전동휠체어를 받긴 힘들다. 우리 군에 노령연금을 받는 사람이 전체 노인의 82%다”라고 전했다.

정순환(가명·79) 할아버지는 경북 의성군 집에 없었다. 2012년 10월 <한겨레>와 만났을 때 마늘 농사를 짓던 할아버지는 대구의 한 병원에 있다. 지난해 10월 갑자기 쓰러졌다. 할아버지 없는 집에는 신재연(가명·78) 할머니 홀로 남았다. 정 할아버지는 처음에 대구의 큰 병원으로 갔지만 한달 병원비 1000만원을 감당할 수 없어 작은 병원으로 옮겼다. 지금도 한달에 190만원씩 병원비가 나간다고 한다. 신 할머니도 지난해 여름 대장암 수술을 받았다. 수술비만 2000여만원이 들어갔다. 병원은 어르신들에게 빚쟁이처럼 손을 벌리고 있다.

노부부는 기초노령연금을 매달 9만8000원씩 받고 있을 뿐이다. 둘이 합쳐 19만6000원이다. 마늘 농사는 지어봐야 한해 700만원도 벌기 어렵다고 한다. “할아버지가 마늘 심고 바로 쓰러졌어. 사람을 써서 농사는 계속할까 하는데 200만원이나 남을까 몰라.” 마늘은 10월에 심고 이듬해 8월 거둔다. 신 할머니는 한숨지었다. “병원비는 아들 딸이 내주는데 이제는 못 해주겠단다.” 아들들의

심정을 이해하는 신 할머니는 더욱 괴롭다.

신 할머니는 박근혜 후보를 찍었다. “대구라니까 좋다고 찍어줬지. 잘하는지 못하는지는 아직 모르겠다.” 김 할머니는 기초연금 공약을 기억하고 있었다. “돈이 왜 아직 안 나오노. 올려준다카니까 좋긴 한데 왜 아직 안 나오노.” 정부 정책대로라면 올해 7월부터 최대 20만원까지 늘어나는 기초연금을 받게 된다. 그래도 병원비를 대기엔 턱없는 돈이다. “노인들 병원에 가고 그럴 때 돈 적

게 나오게 하면 좋지. 그게 제일 좋지.”

오래 살길 바라는 어르신은 없었다. 군위와 의성의 숱한 할머니·할아버지들은, 덜 외롭고, 덜 아프고, 아파도 돈이 덜 드는 것이 바라는 전부였다. 소원을 들어줄 수 있는 이들은 지난 대선 때와 달리, 이 나이든 마을을 더는 찾지 않는다.


지난 21일 전주대 진리관에서 청소노동자들이 재활용품을 정리하는 모습이다. 전주/류우종 김태형 기자 wjryu@hani.co.kr
지난 21일 전주대 진리관에서 청소노동자들이 재활용품을 정리하는 모습이다. 전주/류우종 김태형 기자 wjryu@hani.co.kr

③ 전주대 청소노동자들
최저임금 올라도 우린 제자리
회사에선 4대보험조차 연체
“다시 똘똘 뭉쳐 싸우는 수밖에”

■ 전북 전주, “싸워서 오른 임금” 40~60대 여성들인 전주대 청소노동자들은 2011년 노조를 꾸려 서울까지 오가며 6차례 파업투쟁을 벌인 끝에 2011년 말 법정 최저임금을 받을 수 있었다. 계단 아래 전기장판에서 추위를 견디던데서 전기패널이 깔린 10㎡(3평) 남짓한 휴게실도 얻어냈고, 명절에 20만원 상여금도 받아냈다. 지난해 시급은 4930원이었다. 최저임금 4860원보다 70원 더 받았다.

여기까지다. <한겨레>가 찾아갔던 2012년 11월 이후, 그들의 시계는 멈춰섰다. 나아가 거꾸로 가려 하고 있다. 올해 최저임금은 5210원이지만, 여전히 시급 4930원을 적용받고 있다. 이들이 소속된 용역회사는 학교랑 이야기한 뒤 3월에 정산을 해주겠다고만 말하고 있다. 회사는 4대보험마저 제대로 내지 않았다. 청소노동자들은 13일 연체 고지서를 받았다. 지난해 11월부터 3개월간 4대보험이 연체됐다. 월급명세서를 다시 들여다봤지만 4대보험 명목으로 이미 매달 8만원가량이 빠져나갔다. 회사는 “그 이야기는 3월에 하자”고만 했다.

정아무개(55)씨는 “회사가 어려우면 퇴직금도 불안하고, 차라리 다른 용역(회사)이 들어왔으면 좋겠다”고 털어놨다. 정씨의 형편은 조금 나아질 기미가 보인다. 큰아들은 지난해 초 경기도 파주의 한 대기업에 1년 계약직으로 취업했고, 두 딸도 지난해와 올해 모두 간호사가 됐다. “박근혜가 대통령 돼서 취직된 건 아니잖아요. 대학 졸업하고 취직을 한 거지. 남한테 구걸 안 하고 사는 것뿐이지 달라진 게 뭐가 있어요?” 정씨의 얘기를 듣던 오윤임(47)씨도 한마디 보탰다. “그러니까 우리가 싸워서 이기는 수밖에 없어요. 저희는 더 똘똘 뭉칠 수밖에 없죠.” 이들은 몸으로 부딪혀 ‘연대’를 익히고 있었다.

<한겨레>가 ‘2012 대선 만인보-국토종단 민심기행’을 취재할 때 만났던 전북 전주대 청소노동자의 삶은 나아지지 않았다. 올해 최저임금은 5120원이지만 이들은 지난해와 같은 시급 4930원을 받고 있다. 월급에서 4대 보험으로 8만원이 빠져나가는데도, 청소노동자들은 4대 보험 연체고지서를 받았다. 2012년 11월16일 전주 청소노동자들의 식사 모습. 전주/류우종 김태형 기자 wjryu@hani.co.kr
<한겨레>가 ‘2012 대선 만인보-국토종단 민심기행’을 취재할 때 만났던 전북 전주대 청소노동자의 삶은 나아지지 않았다. 올해 최저임금은 5120원이지만 이들은 지난해와 같은 시급 4930원을 받고 있다. 월급에서 4대 보험으로 8만원이 빠져나가는데도, 청소노동자들은 4대 보험 연체고지서를 받았다. 2012년 11월16일 전주 청소노동자들의 식사 모습. 전주/류우종 김태형 기자 wjryu@hani.co.kr

전주에서도, 횡성에서도, 군위·의성에서도 세상은 그다지 변해 있지 않았다. 고단한 삶들은 2012년, 든든한 ‘뒷배’가 되어줄 대통령을 바랐다. 그리고 박근혜 정부 1년, ‘안녕하다’는 속시원한 대답은 아무에게서도 들을 수 없었다.

횡성 군위 의성 전주/정환봉 서영지 기자 bonge@hani.co.kr

‘대선공신’ 심층면접…“인사·소통 문제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주인 잃은 960점 유류품처럼 아직 묻혀있는 ‘이태원의 진실’ 1.

주인 잃은 960점 유류품처럼 아직 묻혀있는 ‘이태원의 진실’

“울 엄니 만나러 가요, 굿바이” 김수미 직접 쓴 유서곡 2.

“울 엄니 만나러 가요, 굿바이” 김수미 직접 쓴 유서곡

딸 자취방서 머리카락, 손톱을 모았다…이태원 참사 2주기 3.

딸 자취방서 머리카락, 손톱을 모았다…이태원 참사 2주기

임금 59억원 체불한 대표 밖에선 ‘기부천사’…익명 신고가 잡았다 4.

임금 59억원 체불한 대표 밖에선 ‘기부천사’…익명 신고가 잡았다

1타 강사 전한길 “차별금지법 제정되면 국민 피해” 혐오 발언 5.

1타 강사 전한길 “차별금지법 제정되면 국민 피해” 혐오 발언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