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성원 사회부 사회정책팀 기자
[토요판] 리뷰&프리뷰 친절한 기자들
안녕하세요. 사회부 교육 담당 음성원 기자입니다. 혹시 제 이름이 익숙하시다고요? 지난 7~11일과 14일까지, 무려 6일간 <한겨레> 1면에 이름을 올렸거든요. 친일·독재 미화는 물론 수많은 오류로 물의를 빚고 있는 교학사 교과서에 대해 보도하느라 그랬습니다.
역사학자들과 역사 교사들이 ‘불량 교과서’라고 한 교학사 교과서가 결국 교육부의 최종 승인을 받고 일선 학교들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는데요. 올해 새 한국사 교과서를 채택하게 된 1794개 고등학교 중 지금까지 이 교과서를 채택한 곳이 단 한 곳도 없습니다. 교육시장에서 완전히 외면받은 셈이죠. 그런 현상을 조명하면서 1면에 기사를 썼는데, 어느 날 갑자기 교육부가 교과서 개발 과정에 깊숙이 개입하겠다며 편수 기능을 강화하겠다고 발표해서 또 1면에 기사를 쓰는 식이었습니다.
이슈에 대한 설명은 여기까지만 하고, 본론으로 들어갈게요. 많은 분들이 궁금해하시는 부분은 왜 ‘교학사’인가라는 부분입니다. 아시다시피 ‘교학사 교과서’는 ‘불량 교과서’와 동격이 될 정도로 교학사의 이미지는 바닥으로 떨어진 상태잖아요. 이 때문에 저자 잘못 만나서 괜히 덤터기 쓴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옵니다. 하지만 교학사일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이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우선 교학사와 교육부 사이의 밀접한 관계입니다. 교육부 퇴직 관료들의 모임인 사단법인 문우회는 교학사가 발행하는 <교육법전>과 <한국사대사전>을 파는 수익사업을 벌이고 있습니다. 서남수 장관도 장관이 되기 전, 2008년 2월 차관을 끝으로 일선에서 물러난 뒤에 문우회에 가입했습니다. 교육부는 <교육법전>을 2003년부터 올해까지 11년 동안 88~210부가량씩 구입해 모두 1억4191만여원을 썼습니다. 교학사의 양철우 회장은 문우회에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매년 200만원의 특별협찬금을 냈습니다.
최근에도 그 관계를 의심할 만한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지난 13일 오후 1시께 서울시교육청 기자실에는 교학사의 홍보이사가 찾아왔습니다. 최종본이라며 교학사 교과서를 잔뜩 들고 오더니 기자들에게 나눠줬습니다. 전부 고친 교학사 교과서를 한번 읽어보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란 취지였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날 오후 2시께에는 교육부가 갑자기 보도자료를 냈습니다. 교과서 수정이 완료됐다며 논란이 된 내용들이 수정됐다는 자료를 냈습니다. 예고 없는 자료에 기자들도 당황했습니다. 교육부와 교학사는 어쩜 이리도 시점을 잘 맞췄을까요? 성이 ‘교’씨인 형제인 건가요?
참, 교학사 직원이 기자실에 찾아왔을 때 저도 한 권 달라고 했더니, 일일이 매체를 확인하던 그가 <한겨레>는 안 된다고 하더군요. 기자들 중 저만 교과서를 못 받았습니다. 물론 친절한 동료 기자들이 교학사 교과서가 필요없다며 제게 줘 기사 쓰는 데 지장은 없었지만요.
교학사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양철우 회장의 성향 때문이라는 설명도 많습니다. 양 회장은 지난해 4월 교학사판 <한국사대사전>을 출간한 뒤,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좌파 교사들에 의해 역사교육의 정체성이 흔들리는 것을 보며 제대로 된 우리 역사사전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습니다. 우리나라 역사 교사들 대부분을 좌파로 보는 교학사 저자들과 뉴라이트 계열 학자들의 얘기와 다르지 않죠? <한국사대사전>은 제주 4·3사건을 두고 ‘폭동’이라고 기술해 논란이 일기도 했습니다.
지난해 8월30일 검정 통과 이후 무려 4개월 이상 논란이 이어오고 있으니, 중간에 출판을 포기할 법도 했는데 그러지 않았습니다. 직원들은 포기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회장의 의지가 강했다는 소문이 들렸습니다. 이번에 교과서를 낸 8종의 출판사들은 검정 비용과 저자 원고료 등으로 2억원 정도를 쓴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더욱이 교학사는 2012년 부채가 자기 자본의 2배가 넘어 부채비율이 241%일 정도로 경영사정이 좋지 않습니다. 출판 강행 의지가 그만큼 강했다는 겁니다.
양 회장은 지난 14일 제이티비시(JTBC) <뉴스9>에 출연해 교학사 교과서의 낮은 채택률에 대해 언론과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을 강하게 비난했습니다. “매스컴에서 하도 뭐가 어떻다 저렇다 하니까 매스컴이 뭐라고 한 것을 우리가 수정한 것이지 그 자체가 나빠서 수정한 게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전교조에 대해서는 “교원 노조 놈들”이라고까지 했습니다. 저는 교학사 외면 현상은 ‘시민의 상식’에서 비롯됐다고 기사에 썼는데, 저랑은 생각이 다른가 봅니다. 교학사 직원이 제게 교과서를 주지 않은 이유도 알겠네요.
음성원 사회부 사회정책팀 기자 esw@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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